Forgotten Battle, 러시아 하 ... - 1부 7장
2019.02.18 14:40
“나으리께서 산사에 오른데 오빠 준비하라네…”
“산사?”
“나으리는 큰언니께 들리면 반드시 산사에 다녀오곤 했어 저녁때는 우리 공부를 살피셨고…”
“우웅… 그래 이제 나가봐야겠구나”
산사라 탁발보국을 외치는 너절한 중놈들은 우리 같은 동기들도 무시하는 터에 “불령선인”이라 불리는 활동가가 왠 산사일까? 탁발보국이라 집집을 돌며 보국미를 뜯어내던 뒷산 암자의 비구승이 귀신도 모르게 세상을 뜬 것이 작년이다.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들의 짓이라 하며, 쉬쉬 거렸다. 가토 역시 예의 검정 가죽잠바를 입고 동리를 눈에 불을 켜고 다녀보았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역정만 내던 것이 여실하다.
새벽녁에 들어와 조반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해질녘이다. 뉘엇뉘엇 져가는 봄의 해는 아직 남은 겨울기운에 힘이 없다. 불과 엊그제 저녁만 해도 동구밖에서 놀다가 셋째누이의 손에 귀가 붙들려 집에 끌려 들어갔었는데… 가토에 대한 분노가 다시 일어난다.
“게 있었던 것이냐?”
“네…”
“저녁은 절밥으로 할 것이다. 초선이 인력거를 불러두었다. 어여가자.”
“네…”
사실 내 목숨은 인한이형이 살려준 셈이다. 물론 인한이형이 우리 일가를 몰살시킨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넷째 누이를 노렸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에게 모욕을 당한 그 왜놈의 개새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인한이형이 오지 아니 하였다손치더라도 분명 다른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린애이고 어머니와 누이들의 품이 그립다. 가토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게끔 종용하는 인한이형과 초선 누이가 그리 곱게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아직 춥다. 저 아이에게 끄댕이풀이라도 빌리려무나”
“견딜만 합니다. 제 누이와 양친은 목도 없이 찬 바닥에 아직 누워 있을 것 아니겠소? 자식된 놈이 어찌 추위를 느끼겠소”
“가자.”
인한이형은 두말없이 앞장섰다. 내 속을 모르진 않으리라. 대문 앞에는 이미 인력거 한 대가 나와 인한이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거리 손님이여서 그런지 인력거는 번질 거리게 닦여 있었다. 유곽이라 그런지 인력거꾼은 먼발치만 보고 있다.
“오빠 이거 가지고 가”
그 아이였다.
“뭐니?”
“주방 아지매가 견과를 좀 쌌어 점심도 안했는데 허할 것 같아서 부탁했지…”
“?”
“우리 오빠도 살아 있으면 오빠 나이쯤 되었을 거야… 어여가 거꾼 아저씨 기다리시네”
“가자 해가 얼마 안 남았다.”
…
산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였다. 인력거꾼의 빠른 발로도 두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린 것 같다. 초선 누이가 이미 셈을 치룬 듯 인력거꾼은 마중 나온 동승을 보자마자 산 입구에 우리를 내려두고 돌아갔다.
산 허리쯤 가서 인한이형이 말문을 뗐다.
“구월산은 예전부터 조선의 성산 중 하나였지… 예전에도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많은 의병이 날 곳이니라 이 곳의 승려들은 길에 채이는 탁발보국 땡초들과는 많이 다르다.”
인한이형이 처음으로 막말을 했다. 땡초라… 파계승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예전부터 길의 탁발승 산사의 고승 가리지 않고 욕으로 달고 다녔던 말이다. 물론 유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정다운(?) 어감으로 아이들 사이에서도 늦된 아이 덜된 아이에게 하는 욕으로 애용되는 말이다.
“너네 동리에서도 탁발보국 땡초 한 둘쯤 명줄이 끊겼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왜놈들이 만주를 차지하고 본토로 넘어가면서 교활한 수탈을 시작한 것이 탁발보국과 구국헌금과 같은 종교활동이였느니라… 수행을 위한 탁발이나 봉헌을 위한 헌금을 의열단이 언감생심 털 수야 없겠지만, 땡초의 사전함(원문 : 불전함)이나 사기꾼의 현금가방(원문 헌금함)이야말로 안 챙겨가면 천벌 받을만한 일이지”
“푸훗…”
“개성에서도 몇몇이 있었다고 하는데 상인의 후예여서 그런지 지 몫으로도 제법 챙겼다고 하더구나. 개 중에는 무술을 한 자가 몇 있어 어쩔 수 없이 총이나 칼을 쓴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랬군요.”
“우리나라는 호국불교의 전통이 깊다. 중생을 위해 활술(活術)로서 가르친 호국무예가 개인의 안위와 매국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극락에서 유정스님(四溟堂大師)이 아신다면 피눈물을 흘리실 게다.”
“처사님 이제 법당입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벌써 다왔구나”
“큰스님은 큰방에 드셨습니다.”
“곡주는…”
“처사님께서 올라오신다는 전통(전화)를 받고 사형께서 벌써 받아다 두었습니다.”
“허허 내 자주 출입하면 못쓰겠구먼 뭐만한 절의 살림 거덜내겠어”
“저와 큰스님, 사형 셋밖에 없는 암자올씨다. 보살님들과 처사님들의 보시는 저희 셋이 쓰고도 넘칩니다. 탁주 몇말에 거덜씩이나…”
“작은 스님은 못당하겠군요.”
To Be Continued...
덧말>>
그간 소원했습니다.
생업이 할말보다 급하군요.
일단 사과말씀부터 꾸벅...
일본대사의 망언으로 시끄럽네요.
우리가 당당한 나라였다면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배덕자를 국부로 보고
그 자에게 수탈당한 것도 모른체
그 자의 혈통적 후예, 정치적 후예들이 아직까지 큰소리를 치는 나라이니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습니까?
징용과 징병, 그리고 정신대로
빼앗긴 자들의 배상금을 굴욕적으로 빼돌리고
빼돌린 자금으로 이뤄낸 성장이 가장 큰 업적으로 불리는 지금
어쩌면 그 자가 그렇게 본받고 싶어했던
"탈아입구"의 지도자들은 몇푼의 배상금만으로도
"다케시마"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라디오에서는
그 자가 그렇게 좋아했고
"탈아입구"의 "유신"을 실행한 자들이 즐겨불렀던
"Yenka"가 전통가요 "트로트"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그 자보다도 더 나라를 팔아먹었던 자들은
소리없이 웃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회를 놓치지 않는 대 일본제국의 황신들은 아마 더 큰소리로 웃고 있겠지요.
“산사?”
“나으리는 큰언니께 들리면 반드시 산사에 다녀오곤 했어 저녁때는 우리 공부를 살피셨고…”
“우웅… 그래 이제 나가봐야겠구나”
산사라 탁발보국을 외치는 너절한 중놈들은 우리 같은 동기들도 무시하는 터에 “불령선인”이라 불리는 활동가가 왠 산사일까? 탁발보국이라 집집을 돌며 보국미를 뜯어내던 뒷산 암자의 비구승이 귀신도 모르게 세상을 뜬 것이 작년이다.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들의 짓이라 하며, 쉬쉬 거렸다. 가토 역시 예의 검정 가죽잠바를 입고 동리를 눈에 불을 켜고 다녀보았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역정만 내던 것이 여실하다.
새벽녁에 들어와 조반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해질녘이다. 뉘엇뉘엇 져가는 봄의 해는 아직 남은 겨울기운에 힘이 없다. 불과 엊그제 저녁만 해도 동구밖에서 놀다가 셋째누이의 손에 귀가 붙들려 집에 끌려 들어갔었는데… 가토에 대한 분노가 다시 일어난다.
“게 있었던 것이냐?”
“네…”
“저녁은 절밥으로 할 것이다. 초선이 인력거를 불러두었다. 어여가자.”
“네…”
사실 내 목숨은 인한이형이 살려준 셈이다. 물론 인한이형이 우리 일가를 몰살시킨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넷째 누이를 노렸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에게 모욕을 당한 그 왜놈의 개새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인한이형이 오지 아니 하였다손치더라도 분명 다른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린애이고 어머니와 누이들의 품이 그립다. 가토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게끔 종용하는 인한이형과 초선 누이가 그리 곱게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아직 춥다. 저 아이에게 끄댕이풀이라도 빌리려무나”
“견딜만 합니다. 제 누이와 양친은 목도 없이 찬 바닥에 아직 누워 있을 것 아니겠소? 자식된 놈이 어찌 추위를 느끼겠소”
“가자.”
인한이형은 두말없이 앞장섰다. 내 속을 모르진 않으리라. 대문 앞에는 이미 인력거 한 대가 나와 인한이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거리 손님이여서 그런지 인력거는 번질 거리게 닦여 있었다. 유곽이라 그런지 인력거꾼은 먼발치만 보고 있다.
“오빠 이거 가지고 가”
그 아이였다.
“뭐니?”
“주방 아지매가 견과를 좀 쌌어 점심도 안했는데 허할 것 같아서 부탁했지…”
“?”
“우리 오빠도 살아 있으면 오빠 나이쯤 되었을 거야… 어여가 거꾼 아저씨 기다리시네”
“가자 해가 얼마 안 남았다.”
…
산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였다. 인력거꾼의 빠른 발로도 두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린 것 같다. 초선 누이가 이미 셈을 치룬 듯 인력거꾼은 마중 나온 동승을 보자마자 산 입구에 우리를 내려두고 돌아갔다.
산 허리쯤 가서 인한이형이 말문을 뗐다.
“구월산은 예전부터 조선의 성산 중 하나였지… 예전에도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많은 의병이 날 곳이니라 이 곳의 승려들은 길에 채이는 탁발보국 땡초들과는 많이 다르다.”
인한이형이 처음으로 막말을 했다. 땡초라… 파계승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예전부터 길의 탁발승 산사의 고승 가리지 않고 욕으로 달고 다녔던 말이다. 물론 유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정다운(?) 어감으로 아이들 사이에서도 늦된 아이 덜된 아이에게 하는 욕으로 애용되는 말이다.
“너네 동리에서도 탁발보국 땡초 한 둘쯤 명줄이 끊겼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왜놈들이 만주를 차지하고 본토로 넘어가면서 교활한 수탈을 시작한 것이 탁발보국과 구국헌금과 같은 종교활동이였느니라… 수행을 위한 탁발이나 봉헌을 위한 헌금을 의열단이 언감생심 털 수야 없겠지만, 땡초의 사전함(원문 : 불전함)이나 사기꾼의 현금가방(원문 헌금함)이야말로 안 챙겨가면 천벌 받을만한 일이지”
“푸훗…”
“개성에서도 몇몇이 있었다고 하는데 상인의 후예여서 그런지 지 몫으로도 제법 챙겼다고 하더구나. 개 중에는 무술을 한 자가 몇 있어 어쩔 수 없이 총이나 칼을 쓴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랬군요.”
“우리나라는 호국불교의 전통이 깊다. 중생을 위해 활술(活術)로서 가르친 호국무예가 개인의 안위와 매국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극락에서 유정스님(四溟堂大師)이 아신다면 피눈물을 흘리실 게다.”
“처사님 이제 법당입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벌써 다왔구나”
“큰스님은 큰방에 드셨습니다.”
“곡주는…”
“처사님께서 올라오신다는 전통(전화)를 받고 사형께서 벌써 받아다 두었습니다.”
“허허 내 자주 출입하면 못쓰겠구먼 뭐만한 절의 살림 거덜내겠어”
“저와 큰스님, 사형 셋밖에 없는 암자올씨다. 보살님들과 처사님들의 보시는 저희 셋이 쓰고도 넘칩니다. 탁주 몇말에 거덜씩이나…”
“작은 스님은 못당하겠군요.”
To Be Continued...
덧말>>
그간 소원했습니다.
생업이 할말보다 급하군요.
일단 사과말씀부터 꾸벅...
일본대사의 망언으로 시끄럽네요.
우리가 당당한 나라였다면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배덕자를 국부로 보고
그 자에게 수탈당한 것도 모른체
그 자의 혈통적 후예, 정치적 후예들이 아직까지 큰소리를 치는 나라이니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습니까?
징용과 징병, 그리고 정신대로
빼앗긴 자들의 배상금을 굴욕적으로 빼돌리고
빼돌린 자금으로 이뤄낸 성장이 가장 큰 업적으로 불리는 지금
어쩌면 그 자가 그렇게 본받고 싶어했던
"탈아입구"의 지도자들은 몇푼의 배상금만으로도
"다케시마"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라디오에서는
그 자가 그렇게 좋아했고
"탈아입구"의 "유신"을 실행한 자들이 즐겨불렀던
"Yenka"가 전통가요 "트로트"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그 자보다도 더 나라를 팔아먹었던 자들은
소리없이 웃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회를 놓치지 않는 대 일본제국의 황신들은 아마 더 큰소리로 웃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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