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 친구를 강간하다 - 1부 1장

동정병기J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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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주인공J

임가희 : 조용조용하고 말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함. 가끔 문고본을 꺼내 틈틈히 읽는, 문학소녀+미술소녀=예술소녀?!

(유재완) : J의 학교 코앞에 있는 남고생. 성적도 별로고 미술실기능력도 별로, 키가 크고 허우대가 좋지만 까불거리고 가벼운 편이다. 머리는 빡빡이.

(이박진) : 학교 미술교사. 작가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남여 모두에게 인기좋은 늙으수레한 아저씨. J에게 호감을 얻는 유일한 교사다.

*()안의 인물들은 이번 장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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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씨발넘아 달릴준비해라"



"알았으니 초나 재라"



7월의 중반, 낼모레면 여름방학이다. 보통은 엄숙한 면상으로 학문정진에 힘쓰는 모습이어야 겠지만, 막 8교시 수업이 끝나가는 우리반에 그런건 안중에 없다.



"3, 2, 1, 씨바 존내 뛰어!"



종이 침과 동시에 대부분의 애들이 뛰쳐나가고, 2학년때 가르쳤던 것의 재탕이라 판서만 해놓고 졸던 늙은 교사는 일어날 줄 모른다. 어깨뒤로 그 교사를 깨우는 급우한명을 보며 나역시 달린다. 평상시엔 통학버스안에서 빵 쪼가리로 저녁을 때우지만, 오늘은 달랐다. 왜? 학부모회에서 피자를 돌려 대부분의 애들이 급식을 안먹으니, 슬쩍 끼어서 몰래 급식을 꽁쳐 먹을 수가 있거덩!

우리 학교는 복식건물이다. 건물 한채로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에 교실이 있다. 프랑스식이라는데, 씨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먼지도 많고 어쨌든 터줏대감 교사들도 지긋지긋해하는 구조다. 학교의 중앙계단은 교사들만 이용하고 학생들은 건물 양편의 계단을 사용하라는 권장 혹은 명령이 있지만 무시한채 최고속도로 중앙계단을 돌파한다. 한시라도 늦으면 식당에서 줄서느라 밥먹는 시간이 길어져, 통학버스를 놓쳐버린다. 포인트는, 최대한 빠르게, 인거다.

그렇게 우루루 조낸 뛰어 내려가다, 중앙계단 막바지에 들어서자 1층현관이 보였다. 이제 저곳만 돌파하면 식당까진 일직선 코스, 먼저 들어간 놈이 먼저 먹는 거다, 늦으면 죽는거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계단의 창살을 잡고 휘잉~ 하고 뛰어내려 단숨에 네다섯 계단을 넘어 멋진 자세로 착지했다. 무릎에 가해지는 반동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장 앞도 안보고 다시 달리려는 순간!



콰당!!



"아얏!"

"아그그....."



으, 제대로 앞을 살피지 못한채 뛰다보니 계단 옆 복도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못해 그대로 박아버렸다. 아 쪽팔려... 아픈 엉덩이와 허리, 등을 매만지며 앞에 넘어져 있는 사람을 살펴 봤다. 여학생 같은데, 난 손을 내밀면서도 "씨발 급식 늦었다 못먹겠네 오늘도 빵쪼가리 어휴"라는 딴생각을, 제딴에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야, 지금 넘어진 사람을 상대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거야?"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손을 다른 쪽에 내밀었고, 넘어진 사람은 벌써 일어나 내 등을 향해 말한 것이다. 나원참 나도 정신 없군.. 영양보충이 정말 시급한데.



"저기, 괜찮은 거야? 머리다친거 아냐?"



이렇게 말하며 안색을 살피는 여자, 아니 우리학교 여학생.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긴 하지만 중앙계단을 기준으로 동편이 남학생 반, 서편이 여학생 반으로 나뉘어져, 일부에선 남고, 여고로 따로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남녀고제에 대해 학교측에선 상당히 엄하게 금지하고 있어, 남학생들은 그림의 떡인 여학생들을 향해 침이나 흘리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 ...괜찮냐고요... 어, 저기, 그런데 너...?"



정신을 수습하고 가방을 수습하던 나는, 반쯤 앞의 말을 못들은 채 그냥 "어?"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어?"

"너 J잖아? 버스안타고 여기서 뭐하니?"

"아... 가희, 임가희. 그게.."



차마 급식 꽁쳐먹으려고 냅다 뛰던 중이라고 말하진 못하고, 그냥 매점에서 빵이나 사가려고 했다고 어물어물 대답해버렸다.



"흐응. 뭐 그러냐? 그런데 방금 무쟈게 아팠는데."



이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살짝 찡그리며 나를 바라본다. 아 젠장, 밥도 못먹고 자빠져서 기분도 나쁜데 어쩌라구.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치마를 털며-무릎아래 20cm.. 무슨 통치마도 아니고 학교 규정이 이렇다-말했다.



"뭐야, 미안하다고도 안할거야? 학원에서 아무리 말도 안하고 살아도 그래도 명색이 동긴데 이러기야? 아니면.. 그냥 이대로 어물쩡 넘어가길 원해? 너말야..."



나는 말이 많아지는 그녀에게 문득 짜증이 나서 일갈해 버렸다. 이 여자가 지금 가는길 막고 뭐하자는 거야? 뛰어내린 내가 잘못했지만 그쪽도 모퉁이를 돌 때는 주의를 기했어야 할거아냐. 게다가 그 많은 화보들... 응? 화보?



"아 그래 미안하다고! 말이야 너도 잘 안살핀 주제에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야? 그리고... ...뭐야 저건? 화보?"



그것은 화보 묶음으로,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물 비슷하게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가능한 많은 "이미지"자료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종종 학원생들은 화보나 앨범, 소형조형물등을 학원에 가져와 시간날때마다 그것을 스케치하곤 했다.

그녀는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밑 8cm의 단발머리 규정, 물론 고 3은 대부분 가볍게 무시하는 룰이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에 비해 짧은 편인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두발이었다.



"아...! 미.. 미안.."



금방 풀이 죽는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반응이 어째 좀 이상한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그녀는 학원에서도 말 놓는 동성친구하나 없이, 자신의 과제량에만 열심인 약간은 도도하고 모범생같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일련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머리가 식자 미안한 마음이 솓구쳤다. 왜 니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큰소리쳐서 미안해. 잘못은 내가한건데.. 미안. ...안다쳤어?"



내가 사과를 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대답한다. 전체적으로 짧은 컷의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앞머리는 긴편이어서 고개를 숙이자 표정이 가려졌다. 그러고보니 그녀와 제대로된 대화를 하는건 지금이 처음인것 같았다. 학원에서는 벽에 매달린 습작용 그림을 내려줄때 고맙다고 말하거나 하는게 전부였기 때문에.



"아... 괜찮아... 그보다... 맞다 화보..."

"내가, 주울게. 미안하니까."



네다섯 묶음의 화보 뭉치가 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고정을 위해 묶어둔 고무줄이 떨어져 펼쳐진 화보도 있었다.



"... ....이건? 어 이거 내가 3학년 시작할때 산업디자인대회에서 출품한 건데.."



내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듯, 자신도 허리를 숙여 화보들을 줍기 시작했다.



"아...! 그게, 이박진 선생님이 도움이 될거라고 준 화보들인데..."

"헷? 그 샘이? 켓 나도 잘나가나 보네~ 미술샘이 추천을 다해주고~"



이박진은 우리 학교의 미술교사로, 작가로서 성공하기 쉽지않은 조형을 전문분야로 하는 사람이다. 교사 박봉월급을 쪼개 간간히 작품을 만들어 대회에 출품하기도 하는데, 꽤나 실력이 있는지 중간이상의 상을 종종 받아 오기도 한다. 1, 2학년 때 미술수업의 담당교사였는데, 나는 그 수업이 무척 재미있어 그 선생님을 마음에 들게 되었다. 미대준비를 하게 된것도 그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화보를 다 정리하고 고무줄로 다시 묶은 뒤, 멍하니 서있던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자, 여기. 그리고 아까는 진짜 미안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아냐.. 내가 제대로 안 살핀점도 있었어.."



그때 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야, 너 지금 곧장 버스 탈거야?"



그녀는 왼팔에 찬 분홍색 손목시계를 보더니, 아직 시간이 있다면서 가방을 챙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매점 가는김에 니 것까지 사올게. 으음, 물론, 내가 사는거고."

"...뭐?"



그녀는 잠깐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던듯, 멍하니 있다가 내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하릴없이, 나는 다시 질문했고 그녀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아... 매점?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휴, 너 지금 내가 얼마나 짠놈인지 알았으면 그말 못할걸? 나, 빈대라고 유명하다고. 나한테서 얻어먹는다면 곧장 배아파할 놈들이 한두놈이 아니라고."



내가 자신있는 태도로 말하자-Hoo sad-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킥, 미소짓곤 말을 이었다.



"그럼 딸기 페스트리랑 초코우유, 오백원 오백원 해서 천원, 자 여기 받아."



물론 나는 정중히 돈을 물렸다. 내가 누군데? 한번 하기로 하면 끝까지 하는 J아니던가!



"그건 나중에 내가 뜯어먹을 때 받아낼테니 각오하라고. 그럼 난 간다!"



그녀에게 인사를 던진후 난 빠른 걸음으로 그녀 곁을 벗어났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것도 같지만 매점에서 살 빵과 우유를 생각하며 곧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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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털털털~



무슨 소리냐고? 폐차 일보직전인 통학버스 배기음이다. 정말 이런 환경에서 빵과 우유를 목구녕으로 넘겨야 하니 이 무슨...



"어, 의외로 차에서 먹어도 넘어가네? 그런데 되게 불편하다 야."



잊고 있었다. 그녀를. 얼굴을 마주보며 앉을 수 있게 설게된 8인용 통학버스의 특성상 내 앞에 앉은 그녀는 지금 내 얼굴을 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내가 매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로 저녁을 해결하는 중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4호차로, 우리학교와 요앞 남고만 경유하고 바로 학원으로 가기에, 훨씬 질이 좋지만 몇군데나 더 경유해야 도착하는 3호차를 피하고 이곳에 앉은 것이다. 가희는 보통 3호차에 타 4호차엔 나와 유재완, 그 꼴통 놈만 타는데, 어찌된 일인이 이놈이 오늘은 버스에 타질않아 장장 삼십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아, 윽, 숨막혀, 난 맨날 이러고 사는데, 윽, 오히려 태연한, 니가 신기해"

"크크크, 용케도 이런 악조건에서 밥을 먹었군. 앞으론 그냥 학원앞 상가나 분식에서 먹어 좀."

"아, 윽, 휴우, 그럴 시간이 없단말야. 그림 봐야되는데 언제 나가서 밥먹냐. 그리고, 난 버스타는 시간이 무지무지하게 아깝다. 덜컹거려서 잠도 못자지, 밥먹기도 불편하지, 그렇다고 스케치를 할 수가 있나. 봐, 말하기도 윽, 불편해"



빵을 삼키며 우물거리는 내 한심한 꼴을 그녀는 킥킥 거리며 웃어준다. 후, 어째 이뻐보이는게.. 아냐, 내 주제에 여자는 무슨..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린다. 그녀는 잠시 내 쪽을 보더니 이내 창밖을 본다. 생각에 잠긴걸까? 한쪽팔을 창틀에 올려 놓고 입술에 손을 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번, 두근, 한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그녀가 말을 꺼낸다.



"... ...오랜만이야."

"...뭐라고?"

"오랜만이라구. 이렇게 말해본건."



그녀는 시선을 창밖에 던진채로 말을 잇는다. 입술 속의 하얀 치열이 참 가지런해 보인다.



"나.. 원래 중학교때까지는 무지 털털하고... 그런 애였는데...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친했던 애들이랑 떨어지니까, 같이 떠들 애가 없어지더라... 휴... 그거 알아? 남자반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자반 애들은 정말... 죽기살기로 공부해... 일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널널하게 공부했는데... 그 왜 엄마들끼리 모여서 모임같은거 하잖아? 울 엄마는 거기 한번 갔다 오면 꼭 풀이 죽더라... 말은 안하지만 나도 뭐때문에 그러는지는 안다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다. 뭔가를 추억하는 듯한 눈빛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안되더라고... 중학교때 놀기만 한 내가 그제서야 따라잡기란 것은... 정말 힘들었어... 그나마 없던 아는 여자애들도 멀어지고..."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족속일까? 아니다. 나는 그래도 남자라서, 공부가 안되거나 할때면 야자 감독교사의 처벌을 각오하고 뛰쳐나가 스카이 준비반 애들과 농구를 하거나 축구를 했다. 그렇게 한번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면, 피곤하긴 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감독교사도 큰 처벌은 하지 않았다. 사실, 이정도는 일탈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범생이들의 일탈이었긴 했다. 이렇게 나는 그래도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라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비교적 상위클래스라는 우리학교에 홀로 진학하여 중학시절 친했던 동기들과 멀어지고, 살벌한 여자반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여자 스카이 준비반에선 절대 공부하는 책과 노트를 책상밖에 올려두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훔쳐가기 때문이었다. 남자반에서야 친구끼리라면 등을 탁치며 빌려달라고 하거나, 혹은 빵하나 사주거나 급식 줄한번 잘서주면 될일을, 여자반에서는 바늘하나 꽂히지 않는, 그런 분위기-아마 나는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는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에서 그녀는, 발판, 희생양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미대준비를 택한것도,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은 진학률을 위해 주변에서 권유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차가 우회전하며 언뜻 비친 석양에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물안개...?"



문득 그녀가 몹시도 안쓰러워져, 말을 꺼냈다.



"야."

"...왜?"

"그럼, 나랑 친구하자."

"... ...응?"



그녀가 창틀에 머리를 기댄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친구하자고. 왜, 어렸을때 남자애 여자애 가릴것없이 얼음땡하고 놀았잖냐. ...아, 얼음땡 모르냐?"



내가 한말을 이해하자, 그녀는 곧 대뜸 소리쳤다. 정말 기운도 좋다, 저 기운을 평소엔 어따 삶아 먹는건지.



"알아. 이래뵈도 중학교때 까지는 날리는 몸이었다고."

"그러니까 말야. 이 나이에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친구먹자고. 야, 야 그렇게 보지마! 사.. 사귄다거 하는게 아니라, 그냥 친구말야.. 나도 요즘 하도 빈대만 붙었더니 애들이 따돌린다고T^T 진정한 친구가 필요해"



내가 우는 연기를 하자 그녀는 킥, 이미 내게 몇번이나 보여준 미소를 지었다. 기분탓일까? 같은 미소인데도 아까까지의 기운없는 미소와는 전혀 다른, 정말 이 여름의 석양에 걸맞는 상큼한 미소였다.

두근.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거지? 그것도 생판 모르는 애한테...!"



자문하며, 의식적으로 미뤄둔 대답을 찾았다.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계단에서 부딪힌 그때,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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