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 19부
2019.03.24 20:10
어줍잖게 유미 누나를 건드려 놓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았다. 그 동안은 그런 느낌을 알지 못했다던 그녀의 말대로, 그 저녁 이후 나를 쳐다보는 유미 누나의 눈에는 전에 있었던 애틋한 감정 외에 다른 뭔가가 깃들어 있었다. 물론 누나가 드러내고 그걸 내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육체적인 유희에 좀더 눈을 뜨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무거운 뭔가가 나를 짓누르면서, 리비도가 분출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 날 밤 내 질문에 대한 유미 누나의 대답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끔찍한 짓’을 그 동안 내가 그녀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가끔 유미 누나의 치마 위로 내비치는 팬티의 윤곽이라던지, 조심성 없이 내비치는 풍성한 가슴살 같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언뜻 보면 내 남성은 곧바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머릿속에 의식하는 그 순간에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왜 안될까? 내 침대에 혼자 누워 내 스스로 자지를 주물럭거린 건 자위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가, 내 남성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똘똘하게 잘만 일어서는 내 자지... 하지만, 머릿속에 유미누나를 떠올리는 순간 다시 힘이 죽어버렸다. 역시 그녀에게만 안 되는 것이었다.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던 신이 그녀하고는 섹스를 할 수 없도록 암시를 걸어놓은 것처럼... 가장 사랑하는 여자하고 섹스를 못하게 되다니.
의기소침한 나에게 누나는 그녀의 성격으로 봐서는 무척이나 적극적인 대쉬를 해왔지만, 나는 호응해 주지 못했다. 키스나 포옹 정도는 해줄 수 있었지만, 무기력한 내 남성을 보여줄 수는 없어서, 옷을 벗기거나,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추석이 왔고, 추석 연휴의 첫 날 성묘를 갔을 때 있었던 일은 그런 나에게 무기력 뿐만 아니라, 불안감마저 안겨 주었다.
항상 시골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가, 도착한 우리하고 함께 성묘를 하고, 우리랑 함께 서울로 올라와 차례를 지내곤 하셨던 것이 명절 때 할아버지의 일상이었다. 그 해 추석에 할아버지는 그냥 땅 속에 누워 우리를 맞으셨고, 우리도 성묘를 마치고 그 분을 모시고 올라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의 표정이, 아니 엄마의 표정마저 어두운 이유가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차로 3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묘소에 들르는 것이 그 다음 순서였다. 하지만 그 해만은 아빠가 곧바로 외가 동네로 차를 모든 대신, 국도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리시더니 길다란 강줄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우셨다.
“너희들 여기서 좀 기다려라.”
술병과 음식 바구니를 들고 나가시는 엄마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보고, 나는 그분들이 강가로 내려가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가 그때 미국 출장길에 그 정숙이라는 분의 유골을 수습해 오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강에 재를 뿌렸겠지? 누나도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생모에게 인사를 하러 가셨다는 걸 눈치챈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수호야.”
“응?”
“나도 따라가야 하는데...”
친모니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맞았다. 유미 누나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른 척 해, 누나. 다음에 같이 한 번 오자.”
“지금쯤은 바다 한 가운데 계시겠지? 얼마나 쓸쓸할까?”
“누구나 다 그렇지. 죽으면...”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내 친아버지는 어디 묻혀 계실까? 작은 아빠도 모르신다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데도 숨이 가쁘고, 등에 땀줄기가 흘러 내렸다. 누나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을 수는 없겠지?
“절대 엄마나 아빠한테 그런 거 여쭤보지 마! 알았지?”
“내가 바보니?”
“고모한테도!”
“왜 무섭게 그래? 그냥 궁금한 것 뿐인데...”
“아무튼!”
“네가 왜 그래? 내 일인데!”
결국 유미 누나의 눈에서 핑 도는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만약 그 날 저녁, 누나가 근친상간에 대해 ‘끔찍한 일’이라는 말 대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만 해주었어도 내가 그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생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누나의 당연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우리 가족에게는 우울한 기분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유미 누나와 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거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추석 전 날인데도 불구하고, 큰 누나마저 시집가 버린 터라 그런지, 예전의 명절에 비하면 집안이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터락 손님들이 오지 않으니, 음식 준비도 그다지 할 게 없었기 때문에, 일찍 준비를 마치고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유미 누나는 누나대로 방에 일찍 들어가 버렸다.
집안에 감도는 침울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 불러내서 소주라도 한 잔 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벨이 울렸을 때, 후다닥 뛰어 내려가 인터폰을 집어 든 것은 그런 침울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어떤 사건이라도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이씨... 누구야?’
모니터에 모습도 보이지 않고,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방문자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대문까지 나갔다. 누군가 장난을 하려니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문을 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열린 대문 앞에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서있는 진규 씨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유미 누나의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한 잔 걸친 듯, 벌개져 있는 그의 얼굴이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복잡하게 변했다. 뿔테 안경 뒤의 그의 시선이 내 복장 상태를 훑었다. 반바지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여자 친구의 집에 명절 인사를 하러 온 남자 같지가 않았을 테니...
“역시, 그랬네요.”
“뭐가요?”
“어디선가 본 것 같더니, 유미 씨 동생이죠?”
뻔뻔스럽게 유미 남자친굽니다 하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유미 누나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확신한 듯, 그의 얼굴에 희열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네. 근데 무슨 일로...”
“인사드리려고요.”
그가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를 내 앞에 내밀었다. 누나의 마음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 테니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에게 유미 누나의 애인으로 소개된 ‘김수호’에 맞설 각오를 하고...
“술을 드신 것 같은데...”
“네. 한 잔 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에게 실례할 만큼은 아닙니다.”
내가 누나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게 들통 난 이상, 나중에 누나의 타박을 듣더라도 그를 집에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가 자신의 속내를 꺼내 놓았다.
“수호 씨가 유미 씨 동생이라서 다행이예요. 하하하, 안 그랬으면 진짜 강적인데...”
“죄송해요. 말씀 낮추세요, 형님.”
“성격이 시원시원 하네.”
“우헤헤헤, 낯 간지러워서 그래요. 그 날 속인 거...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 날 이후 여태까지 너하고 어떻게 싸울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허무하다.”
“집은 어떻게 아셨어요?”
“좀 치사하지만 유미 씨 몰래 따라왔어.”
“치사하네요. 큭큭.”
뜻밖의 불청객에 아빠는 무척이나 놀라신 듯 했다. 하지만 응접실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한 진규 씨가 ‘유미 씨를 사랑합니다. 교제 허락해 주십시요.’하고 했을 때 아빠는 껄껄껄 하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이층에서 내려오던 유미 누나는 그 장면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무모한 용기는 최소한 부모님들께는 성공이었다.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요즘 세상에도 어른들에게 허락받고 교제하는, 거의 드물게 ‘제대로 된 청년’이었다. 게다가 벌써 한 잔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광식 씨보다는 월등한 주량까지 그 분의 마음에 들었으니, 예의상 같이 앉아 있는 유미 누나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아빠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미 누나에게 친절한 당부까지...
“유미야, 박 군 배웅해 줘라.”
“괜찮으시면 수호하고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아빠를 공략한 그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그는 그럼으로써 유미 누나의 마음을 점점 자신 쪽으로 돌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 동안 의대에 다니는 누나의 애인으로만 알고 있던, 김 수호가 사실은 누나의 동생이었으니, 경쟁자마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 마주 앉은 나는 그의 전과를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형님.”
“으하하, 사실은 떨려 죽는 줄 알았어.”
“잘 하신 거예요.”
“누나는 싫어하는 눈치더라. 뭐, 깜짝 놀랐겠지?”
그에게 호감이 갔다. 그리 잘 생기지는 않은 샌님 같은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유미 누나에 대한 적극적이고 순수한 열정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앞으로 유미 누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진규 씨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 기분은 더 가라앉아 있었다.
“누나가 전에 나한테...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했는데...”
“.....”
“수호가 아는 사람인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집에 찾아오거나 한 적 있어?”
“아직...”
“그럼, 분명 없는 거네. 학교에서도 그런 낌새는 없었으니까...”
“누나 마음 잡을 자신 있으세요?”
“해 봐야지.”
“우리 누나, 사랑하세요?”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벌써 3년이 다 되가네. 나 혼자 앓기만 하다가 올해 여름에 처음으로 고백했는데,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하더라. 그 때는 정말... 죽고 싶었거든.”
그도 취해 있었으니, 조금은 과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그가 유미 누나를 더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태도는 진실 되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뿐인 누나의 동생을 우군으로 만드려는 적극성까지 있었다.
“나 좀 도와주라, 수호야.”
“할 수 있는 만큼은 할게요.”
그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때 쯤에는 걸음이 꼬일 만큼 취해 있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유미 누나의 곁을 스치며, ‘누나 남자 친구 멋지더라.’하고 쓸데없는 말을 해 준 건, 내 기분이 괜찮다는 걸 알려줄 겸, 진지한 대화를 피할 겸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 방까지 나를 따라 들어왔다.
“수호야, 잠깐만...”
“나 취했어, 누나. 내일 얘기하자.”
“화났어?”
왜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규 씨의 예정되지 않는 방문이 날 불쾌하게 했다고 믿는 걸까? 화는 오히려 유미 누나가 내야만 할 상황이었다. 누나의 거짓말을 그에게 들키게 한 사람은 나니까...
“무슨 화가 나? 나, 기분 좋아. 지금.”
“미안해.”
또 저런다... 모든 일이 누나하고 상관없이 벌어졌는데도, 그녀는 내게 사과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니 만큼 당연히 진규 씨에 대해 화가 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 그녀의 지나친 사과는, 그녀가 나를 질투나 하는 옹졸한 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 ‘미안해’라는 말에 오히려 화가 났다.
“누나.”
“응?”
“누나가 누굴 만나든 나한테 미안할 필요 없잖아? 난 그냥 남동생일 뿐인데, 내가 누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나 있어?”
그건 진짜 옹졸한 말이었다. 누나의 표정이 변했다는 건 알았지만,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 다음 말마저 내뱉고 말았다.
“누굴 만나든, 사귀든 나한테 신경 쓰지 마. 나 별 관심 없어.”
그 말은 전부터 누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와의 관계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유로운 교제를 하지 못하는 걸 염려하는 말이었지만, 너무나 적절하지 못한 때에, 적절하지 못한 어투로 나온 그 말은 그녀에게는 질책으로 들렸을 것이다. 누나는 응접실에 있는 진규 씨를 목격하였을 때보다 더 하애진 얼굴을 홱 돌리고는, 내 방을 나가 버렸다.
[집에 계신가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용건인데요?]
[명절이고 해서... 인사를 드리려고요.]
[그럴 필요 없어요.]
[잠깐 찾아가 뵙겠습니다.]
[괜찮아요. 오지마세요.]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오지 마라니깐요?]
추석 날 차례를 지낸 후에, 유진이 새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를 모른 체 하고 나는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지 말라니까 더 가고 싶었다. 평소에 고맙게 해주신 분한테 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어머니가 손에 들려주신 선물 상자를 하나 들고 나는 그녀의 집 벨을 눌렀다.
유진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그 새엄마에 대한 내 생각도 점점 유진의 생각과 동질화되고 있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사업에 이용하는 여자인데다, 의붓자식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배임자였으니... 그저 선물만 전해 주고,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녀가 나를 보고 당황해 하기는 처음이었다.
“명절 잘 보내십시요. 이거 별 건 아니지만...”
그녀의 시선이 내가 내민 선물 상자를 지나, 조금 전에 나를 실어주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줘요.”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절박했지만, 명절 인사를 하러 거기까지 간 사람에게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에 대해 조금 화가 나 있던 터라, 나는 능청을 피우고 있었다.
“어서요.”
“저 그냥 돌아갈게요.”
“안돼요!”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는 나를 제지한 그녀는, 내 손목을 쥐고 집 안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
“제발....!”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신발을 집어 들고 나를 성수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는 와보지 않으니까...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요.”
“왜요?”
“나중에... 말해 줄게요.”
내 고개가 끄덕거려지자마자 그녀의 몸이 잽싸게 방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몇 초 후에 현관문이 열리고, 떠들썩한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여보, 나 왔어.”
그 걸걸한 음성의 주인공은 유진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는 일본 사람... 혹시... 유진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 날 따라 유독 노출이 심했던 유진의 새엄마... 그녀는 조금 전의 다급함을 어느새 진정시키고 상냥한 일본말로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 잔 하는 듯... 부엌 쪽에서 들리는 일본 말은 나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이야기 소리가 계속되다 갑자기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분위기가 좋다는 것만 짐작할 뿐... 유진의 말 대로라면 조금 후에 유진의 아버지는 외출할 것이었다. 과연, 조금 후에 잠깐 볼 일이 있다면 나갔다 오겠다는 유진의 아버지를 새엄마가 배웅하는 소리가 들였다.
사실이었구나. 그럼 다음 순서는... 새엄마가 그 쪽바리를 유혹하고 같이 섹스를 하는 것이겠지? 남일이다.. 남일..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새겨 보았지만, 가슴 아래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필 상대가 그 날 따라 일본 놈이었다는 것도 내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내 머리 속에서 유진이 새엄마는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에게 추파를 던지고, 그가 더듬어 오면 못 이기는 척 그 손길을 받아들이리라. 황홀한 척 교성을 내 줄 수도 있겠지... 그가 옷을 벗을 걸 요구하고, 그녀는 헐렁한 천조각을 벗어 던질 것이다. 그 동물 같은 몸매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그래도 얼굴에는 부끄럽다는 듯 수줍은 표정을 짓겠지? 일본 놈은 그녀의 환상적인 몸매를 보고 참지 못할 테고... 어쩌면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그의 사타구니를 헤집고, 거기에 머리를 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철장에 갖힌 늑대처럼 성수의 방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는 그런 불결한 부부한테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벌떡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는 데는 전혀 도움이. 슬며시 문고리를 쥐고 돌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슬며시 머리를 거실로 내 놓았다.
내 예상이 대충은 맞았다는 걸 확인하자, 더 미칠 것 같았다.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지는 작은 응~, 응~ 소리의 근원은 빼꼼히 문이 열린 욕실이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그 문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맞은 편 벽에 붙은 변기 위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몸을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 앉은 새엄마의 몸이 가리고 있었다.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여자의 젖무덤을 뒤 쪽에서 돌아온 남자의 손이 쥐어짜듯 움켜쥐고 있었고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 여자는 길다란 목을 뒤로 젖히고 과장된 듯한 음란한 교성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씨발... 얼굴이 당기고,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일어서는 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흥분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 섹스를 하던, 그건 그녀의 일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 남매도, 내 엄마도, 내 아내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미칠 듯한 분노가 치미는지...
아래로 숙여졌다가 다시 들린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하고, 그녀의 시선이 내 눈을 쳐다 보았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쳐들어가려는 내 충동을 눈치챈 듯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면서, 질컥거리는 마찰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흐응~~, 흐응~~, 흐응~~, 흐응~~!”
마치 내가 보고 있어서 더 흥분한 듯, 조금 전보다 커진 그녀의 교성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녀의 눈이 절반쯤 감기고, 붉은 입술은 절반쯤 벌어졌다. 남자의 허벅지 위에서 농구공처럼 튕겨지는 그녀의 엉덩이... 그녀의 미간이 좁아지고 주름이 잡혔다. 목이 뒤로 꺾어지고 벌름거리는 콧구멍이 둥그런 동굴처럼 보였다. 남자의 입에서도 비명과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앗! 앗! 앗!”
“흐으응~~! 아아~~아~~ 아~~아~~!”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발꿈치를 세우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욕구를 분출하지 못한 자지가 쇠몽둥이처럼 단단해져 바지를 들추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있는 힘은 다 빠져나가 버린 듯 무기력했다. 성수가 그녀에게 지어준 ‘갈보’라는 별명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걸 봤으니 아무리 새엄마라도 성수가 그냥 참을 수 있었겠는가? 유진이가 본 섹스가 저런 거였으니...
삼십 분쯤 지나자 집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쾌활한 유진의 아버지 목소리를 듣자 속이 메슥거렸다. 미친 새끼.... 그가 일본 놈을 데리고 나가자, 집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느샌가 다시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화장까지 하고 있는 뻔뻔스러움... 문을 열고 나온 나를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들이켰다.
“갈게요.”
“기다려요.”
그녀가 베란다로 사라지더니, 가방을 하나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이거 가져가요.”
“뭔데요?”
“몰라요. 선물 들어온 거예요. 어머니 가져다 드리세요.”
거절해야 예의지만, 그녀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었다. 신발을 들고 터덜터덜 나가는 내 뒷모습을 그녀가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나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죠?”
“아니요.”
“알고 있었어요?”
“대충은...”
“내가 우습지 않아요?”
“아니요. 다만...”
“다만 뭐예요?”
“유진이가 불쌍해요. 성수도...”
“나는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유진이와 성수에게 그녀는 가해자였다.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는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녀가 달리듯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쥐고 몸을 돌렸다. 이글거리는 두 눈에 실성한 듯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절규하듯 따져 묻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안 불쌍하냐구요!!”
“불쌍해요... 왜 그렇게 사세요?”
갑자기 그녀가 덮치듯 내 허리를 감고 안겨왔다. 뭉클하게 깨지는 젖무덤. 이리저리 피하는 내 얼굴을 집요하게 쫓아와 입술을 찍었다.
“안아줘요!”
“어머니.”
“미미라고 불러 줘요!”
“놓으세요.”
“제발~~!”
조금 전에 다른 남자랑 짐승 같은 짓을 해 놓고 안아달라고? 그녀의 손이 허둥지둥 내 벨트를 쥐었다. 매달리는 그녀를 억지로 뿌리쳐 떼어내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울부짖는 듯한 그녀의 흐느낌이 내 귓전을 후볐다.
그녀도 그런 걸 좋아서 하지는 않는 듯 했지만, 그녀의 사연 따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성수 이 불쌍한 새끼. 어쩌다 저런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걔가 제대해서도 저 여자를 잊지 못하면, 무조건 말린다!
집에 도착해 보니, 신호부부가 먼저 와 있었고, 아빠가 그들에게 전 날 밤 집을 찾아온 진규 씨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문제는 나였다. 무거운 뭔가가 나를 짓누르면서, 리비도가 분출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 날 밤 내 질문에 대한 유미 누나의 대답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끔찍한 짓’을 그 동안 내가 그녀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가끔 유미 누나의 치마 위로 내비치는 팬티의 윤곽이라던지, 조심성 없이 내비치는 풍성한 가슴살 같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언뜻 보면 내 남성은 곧바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머릿속에 의식하는 그 순간에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왜 안될까? 내 침대에 혼자 누워 내 스스로 자지를 주물럭거린 건 자위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가, 내 남성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똘똘하게 잘만 일어서는 내 자지... 하지만, 머릿속에 유미누나를 떠올리는 순간 다시 힘이 죽어버렸다. 역시 그녀에게만 안 되는 것이었다.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던 신이 그녀하고는 섹스를 할 수 없도록 암시를 걸어놓은 것처럼... 가장 사랑하는 여자하고 섹스를 못하게 되다니.
의기소침한 나에게 누나는 그녀의 성격으로 봐서는 무척이나 적극적인 대쉬를 해왔지만, 나는 호응해 주지 못했다. 키스나 포옹 정도는 해줄 수 있었지만, 무기력한 내 남성을 보여줄 수는 없어서, 옷을 벗기거나,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추석이 왔고, 추석 연휴의 첫 날 성묘를 갔을 때 있었던 일은 그런 나에게 무기력 뿐만 아니라, 불안감마저 안겨 주었다.
항상 시골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가, 도착한 우리하고 함께 성묘를 하고, 우리랑 함께 서울로 올라와 차례를 지내곤 하셨던 것이 명절 때 할아버지의 일상이었다. 그 해 추석에 할아버지는 그냥 땅 속에 누워 우리를 맞으셨고, 우리도 성묘를 마치고 그 분을 모시고 올라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의 표정이, 아니 엄마의 표정마저 어두운 이유가 잘 설명이 되지 않았다.
차로 3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묘소에 들르는 것이 그 다음 순서였다. 하지만 그 해만은 아빠가 곧바로 외가 동네로 차를 모든 대신, 국도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리시더니 길다란 강줄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우셨다.
“너희들 여기서 좀 기다려라.”
술병과 음식 바구니를 들고 나가시는 엄마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보고, 나는 그분들이 강가로 내려가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가 그때 미국 출장길에 그 정숙이라는 분의 유골을 수습해 오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강에 재를 뿌렸겠지? 누나도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생모에게 인사를 하러 가셨다는 걸 눈치챈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수호야.”
“응?”
“나도 따라가야 하는데...”
친모니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맞았다. 유미 누나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른 척 해, 누나. 다음에 같이 한 번 오자.”
“지금쯤은 바다 한 가운데 계시겠지? 얼마나 쓸쓸할까?”
“누구나 다 그렇지. 죽으면...”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내 친아버지는 어디 묻혀 계실까? 작은 아빠도 모르신다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데도 숨이 가쁘고, 등에 땀줄기가 흘러 내렸다. 누나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을 수는 없겠지?
“절대 엄마나 아빠한테 그런 거 여쭤보지 마! 알았지?”
“내가 바보니?”
“고모한테도!”
“왜 무섭게 그래? 그냥 궁금한 것 뿐인데...”
“아무튼!”
“네가 왜 그래? 내 일인데!”
결국 유미 누나의 눈에서 핑 도는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만약 그 날 저녁, 누나가 근친상간에 대해 ‘끔찍한 일’이라는 말 대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만 해주었어도 내가 그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생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누나의 당연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우리 가족에게는 우울한 기분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유미 누나와 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거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추석 전 날인데도 불구하고, 큰 누나마저 시집가 버린 터라 그런지, 예전의 명절에 비하면 집안이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터락 손님들이 오지 않으니, 음식 준비도 그다지 할 게 없었기 때문에, 일찍 준비를 마치고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유미 누나는 누나대로 방에 일찍 들어가 버렸다.
집안에 감도는 침울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 불러내서 소주라도 한 잔 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벨이 울렸을 때, 후다닥 뛰어 내려가 인터폰을 집어 든 것은 그런 침울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어떤 사건이라도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이씨... 누구야?’
모니터에 모습도 보이지 않고,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방문자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대문까지 나갔다. 누군가 장난을 하려니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문을 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열린 대문 앞에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서있는 진규 씨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유미 누나의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한 잔 걸친 듯, 벌개져 있는 그의 얼굴이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복잡하게 변했다. 뿔테 안경 뒤의 그의 시선이 내 복장 상태를 훑었다. 반바지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여자 친구의 집에 명절 인사를 하러 온 남자 같지가 않았을 테니...
“역시, 그랬네요.”
“뭐가요?”
“어디선가 본 것 같더니, 유미 씨 동생이죠?”
뻔뻔스럽게 유미 남자친굽니다 하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유미 누나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확신한 듯, 그의 얼굴에 희열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네. 근데 무슨 일로...”
“인사드리려고요.”
그가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를 내 앞에 내밀었다. 누나의 마음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 테니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에게 유미 누나의 애인으로 소개된 ‘김수호’에 맞설 각오를 하고...
“술을 드신 것 같은데...”
“네. 한 잔 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에게 실례할 만큼은 아닙니다.”
내가 누나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게 들통 난 이상, 나중에 누나의 타박을 듣더라도 그를 집에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가 자신의 속내를 꺼내 놓았다.
“수호 씨가 유미 씨 동생이라서 다행이예요. 하하하, 안 그랬으면 진짜 강적인데...”
“죄송해요. 말씀 낮추세요, 형님.”
“성격이 시원시원 하네.”
“우헤헤헤, 낯 간지러워서 그래요. 그 날 속인 거...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 날 이후 여태까지 너하고 어떻게 싸울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허무하다.”
“집은 어떻게 아셨어요?”
“좀 치사하지만 유미 씨 몰래 따라왔어.”
“치사하네요. 큭큭.”
뜻밖의 불청객에 아빠는 무척이나 놀라신 듯 했다. 하지만 응접실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한 진규 씨가 ‘유미 씨를 사랑합니다. 교제 허락해 주십시요.’하고 했을 때 아빠는 껄껄껄 하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이층에서 내려오던 유미 누나는 그 장면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무모한 용기는 최소한 부모님들께는 성공이었다.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요즘 세상에도 어른들에게 허락받고 교제하는, 거의 드물게 ‘제대로 된 청년’이었다. 게다가 벌써 한 잔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광식 씨보다는 월등한 주량까지 그 분의 마음에 들었으니, 예의상 같이 앉아 있는 유미 누나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아빠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미 누나에게 친절한 당부까지...
“유미야, 박 군 배웅해 줘라.”
“괜찮으시면 수호하고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아빠를 공략한 그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그는 그럼으로써 유미 누나의 마음을 점점 자신 쪽으로 돌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 동안 의대에 다니는 누나의 애인으로만 알고 있던, 김 수호가 사실은 누나의 동생이었으니, 경쟁자마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 마주 앉은 나는 그의 전과를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형님.”
“으하하, 사실은 떨려 죽는 줄 알았어.”
“잘 하신 거예요.”
“누나는 싫어하는 눈치더라. 뭐, 깜짝 놀랐겠지?”
그에게 호감이 갔다. 그리 잘 생기지는 않은 샌님 같은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유미 누나에 대한 적극적이고 순수한 열정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앞으로 유미 누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진규 씨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 기분은 더 가라앉아 있었다.
“누나가 전에 나한테...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했는데...”
“.....”
“수호가 아는 사람인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집에 찾아오거나 한 적 있어?”
“아직...”
“그럼, 분명 없는 거네. 학교에서도 그런 낌새는 없었으니까...”
“누나 마음 잡을 자신 있으세요?”
“해 봐야지.”
“우리 누나, 사랑하세요?”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벌써 3년이 다 되가네. 나 혼자 앓기만 하다가 올해 여름에 처음으로 고백했는데,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하더라. 그 때는 정말... 죽고 싶었거든.”
그도 취해 있었으니, 조금은 과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그가 유미 누나를 더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태도는 진실 되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뿐인 누나의 동생을 우군으로 만드려는 적극성까지 있었다.
“나 좀 도와주라, 수호야.”
“할 수 있는 만큼은 할게요.”
그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때 쯤에는 걸음이 꼬일 만큼 취해 있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유미 누나의 곁을 스치며, ‘누나 남자 친구 멋지더라.’하고 쓸데없는 말을 해 준 건, 내 기분이 괜찮다는 걸 알려줄 겸, 진지한 대화를 피할 겸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내 방까지 나를 따라 들어왔다.
“수호야, 잠깐만...”
“나 취했어, 누나. 내일 얘기하자.”
“화났어?”
왜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규 씨의 예정되지 않는 방문이 날 불쾌하게 했다고 믿는 걸까? 화는 오히려 유미 누나가 내야만 할 상황이었다. 누나의 거짓말을 그에게 들키게 한 사람은 나니까...
“무슨 화가 나? 나, 기분 좋아. 지금.”
“미안해.”
또 저런다... 모든 일이 누나하고 상관없이 벌어졌는데도, 그녀는 내게 사과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니 만큼 당연히 진규 씨에 대해 화가 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 그녀의 지나친 사과는, 그녀가 나를 질투나 하는 옹졸한 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 ‘미안해’라는 말에 오히려 화가 났다.
“누나.”
“응?”
“누나가 누굴 만나든 나한테 미안할 필요 없잖아? 난 그냥 남동생일 뿐인데, 내가 누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나 있어?”
그건 진짜 옹졸한 말이었다. 누나의 표정이 변했다는 건 알았지만,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 다음 말마저 내뱉고 말았다.
“누굴 만나든, 사귀든 나한테 신경 쓰지 마. 나 별 관심 없어.”
그 말은 전부터 누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와의 관계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자유로운 교제를 하지 못하는 걸 염려하는 말이었지만, 너무나 적절하지 못한 때에, 적절하지 못한 어투로 나온 그 말은 그녀에게는 질책으로 들렸을 것이다. 누나는 응접실에 있는 진규 씨를 목격하였을 때보다 더 하애진 얼굴을 홱 돌리고는, 내 방을 나가 버렸다.
[집에 계신가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용건인데요?]
[명절이고 해서... 인사를 드리려고요.]
[그럴 필요 없어요.]
[잠깐 찾아가 뵙겠습니다.]
[괜찮아요. 오지마세요.]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오지 마라니깐요?]
추석 날 차례를 지낸 후에, 유진이 새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를 모른 체 하고 나는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지 말라니까 더 가고 싶었다. 평소에 고맙게 해주신 분한테 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어머니가 손에 들려주신 선물 상자를 하나 들고 나는 그녀의 집 벨을 눌렀다.
유진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그 새엄마에 대한 내 생각도 점점 유진의 생각과 동질화되고 있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사업에 이용하는 여자인데다, 의붓자식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배임자였으니... 그저 선물만 전해 주고,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녀가 나를 보고 당황해 하기는 처음이었다.
“명절 잘 보내십시요. 이거 별 건 아니지만...”
그녀의 시선이 내가 내민 선물 상자를 지나, 조금 전에 나를 실어주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줘요.”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절박했지만, 명절 인사를 하러 거기까지 간 사람에게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에 대해 조금 화가 나 있던 터라, 나는 능청을 피우고 있었다.
“어서요.”
“저 그냥 돌아갈게요.”
“안돼요!”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는 나를 제지한 그녀는, 내 손목을 쥐고 집 안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
“제발....!”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신발을 집어 들고 나를 성수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는 와보지 않으니까...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요.”
“왜요?”
“나중에... 말해 줄게요.”
내 고개가 끄덕거려지자마자 그녀의 몸이 잽싸게 방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몇 초 후에 현관문이 열리고, 떠들썩한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여보, 나 왔어.”
그 걸걸한 음성의 주인공은 유진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는 일본 사람... 혹시... 유진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 날 따라 유독 노출이 심했던 유진의 새엄마... 그녀는 조금 전의 다급함을 어느새 진정시키고 상냥한 일본말로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 잔 하는 듯... 부엌 쪽에서 들리는 일본 말은 나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이야기 소리가 계속되다 갑자기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분위기가 좋다는 것만 짐작할 뿐... 유진의 말 대로라면 조금 후에 유진의 아버지는 외출할 것이었다. 과연, 조금 후에 잠깐 볼 일이 있다면 나갔다 오겠다는 유진의 아버지를 새엄마가 배웅하는 소리가 들였다.
사실이었구나. 그럼 다음 순서는... 새엄마가 그 쪽바리를 유혹하고 같이 섹스를 하는 것이겠지? 남일이다.. 남일..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새겨 보았지만, 가슴 아래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필 상대가 그 날 따라 일본 놈이었다는 것도 내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내 머리 속에서 유진이 새엄마는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에게 추파를 던지고, 그가 더듬어 오면 못 이기는 척 그 손길을 받아들이리라. 황홀한 척 교성을 내 줄 수도 있겠지... 그가 옷을 벗을 걸 요구하고, 그녀는 헐렁한 천조각을 벗어 던질 것이다. 그 동물 같은 몸매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그래도 얼굴에는 부끄럽다는 듯 수줍은 표정을 짓겠지? 일본 놈은 그녀의 환상적인 몸매를 보고 참지 못할 테고... 어쩌면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그의 사타구니를 헤집고, 거기에 머리를 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철장에 갖힌 늑대처럼 성수의 방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는 그런 불결한 부부한테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벌떡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는 데는 전혀 도움이. 슬며시 문고리를 쥐고 돌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슬며시 머리를 거실로 내 놓았다.
내 예상이 대충은 맞았다는 걸 확인하자, 더 미칠 것 같았다.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지는 작은 응~, 응~ 소리의 근원은 빼꼼히 문이 열린 욕실이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그 문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맞은 편 벽에 붙은 변기 위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몸을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 앉은 새엄마의 몸이 가리고 있었다.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여자의 젖무덤을 뒤 쪽에서 돌아온 남자의 손이 쥐어짜듯 움켜쥐고 있었고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 여자는 길다란 목을 뒤로 젖히고 과장된 듯한 음란한 교성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씨발... 얼굴이 당기고,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일어서는 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흥분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 섹스를 하던, 그건 그녀의 일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 남매도, 내 엄마도, 내 아내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미칠 듯한 분노가 치미는지...
아래로 숙여졌다가 다시 들린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하고, 그녀의 시선이 내 눈을 쳐다 보았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쳐들어가려는 내 충동을 눈치챈 듯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면서, 질컥거리는 마찰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흐응~~, 흐응~~, 흐응~~, 흐응~~!”
마치 내가 보고 있어서 더 흥분한 듯, 조금 전보다 커진 그녀의 교성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녀의 눈이 절반쯤 감기고, 붉은 입술은 절반쯤 벌어졌다. 남자의 허벅지 위에서 농구공처럼 튕겨지는 그녀의 엉덩이... 그녀의 미간이 좁아지고 주름이 잡혔다. 목이 뒤로 꺾어지고 벌름거리는 콧구멍이 둥그런 동굴처럼 보였다. 남자의 입에서도 비명과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앗! 앗! 앗!”
“흐으응~~! 아아~~아~~ 아~~아~~!”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발꿈치를 세우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욕구를 분출하지 못한 자지가 쇠몽둥이처럼 단단해져 바지를 들추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있는 힘은 다 빠져나가 버린 듯 무기력했다. 성수가 그녀에게 지어준 ‘갈보’라는 별명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걸 봤으니 아무리 새엄마라도 성수가 그냥 참을 수 있었겠는가? 유진이가 본 섹스가 저런 거였으니...
삼십 분쯤 지나자 집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쾌활한 유진의 아버지 목소리를 듣자 속이 메슥거렸다. 미친 새끼.... 그가 일본 놈을 데리고 나가자, 집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느샌가 다시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화장까지 하고 있는 뻔뻔스러움... 문을 열고 나온 나를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들이켰다.
“갈게요.”
“기다려요.”
그녀가 베란다로 사라지더니, 가방을 하나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이거 가져가요.”
“뭔데요?”
“몰라요. 선물 들어온 거예요. 어머니 가져다 드리세요.”
거절해야 예의지만, 그녀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었다. 신발을 들고 터덜터덜 나가는 내 뒷모습을 그녀가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나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죠?”
“아니요.”
“알고 있었어요?”
“대충은...”
“내가 우습지 않아요?”
“아니요. 다만...”
“다만 뭐예요?”
“유진이가 불쌍해요. 성수도...”
“나는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유진이와 성수에게 그녀는 가해자였다.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는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녀가 달리듯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쥐고 몸을 돌렸다. 이글거리는 두 눈에 실성한 듯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절규하듯 따져 묻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안 불쌍하냐구요!!”
“불쌍해요... 왜 그렇게 사세요?”
갑자기 그녀가 덮치듯 내 허리를 감고 안겨왔다. 뭉클하게 깨지는 젖무덤. 이리저리 피하는 내 얼굴을 집요하게 쫓아와 입술을 찍었다.
“안아줘요!”
“어머니.”
“미미라고 불러 줘요!”
“놓으세요.”
“제발~~!”
조금 전에 다른 남자랑 짐승 같은 짓을 해 놓고 안아달라고? 그녀의 손이 허둥지둥 내 벨트를 쥐었다. 매달리는 그녀를 억지로 뿌리쳐 떼어내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울부짖는 듯한 그녀의 흐느낌이 내 귓전을 후볐다.
그녀도 그런 걸 좋아서 하지는 않는 듯 했지만, 그녀의 사연 따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성수 이 불쌍한 새끼. 어쩌다 저런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걔가 제대해서도 저 여자를 잊지 못하면, 무조건 말린다!
집에 도착해 보니, 신호부부가 먼저 와 있었고, 아빠가 그들에게 전 날 밤 집을 찾아온 진규 씨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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