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했습니다 - 1부 14장

난 한참을 지연이가 빠져나간 빈자리의 공허함에 힘들어해야했다. 항상 나를 웃게해주고 놀라게 만들던 이쁜아이... 나의 실수로 볼수 없게 되버렸다.

수정이도 지연이의 갑작스런 이민이 충격이었는지 그뒤로 나에게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귀여운 두 조카와 형 부부가 있었기에 나름대로 빠르게 원래의 나로 돌아갈수 있었다.

아기들의 이름은 수연이와 우림이로 지었다. 사실 이름을 두개씩 지어놨는데 의외로 이란성 쌍둥이가 태어나 둘중에 하나씩 고르느라 셋이서 한참을 고민했었다. 결국 수진이와 태림이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아기들은 탈없이 커갔고, 형수도 빠르게 회복을해갔다. 형도 이젠 완전히 자리를 잡아 굳이 형수가 돈을 벌지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다.



10월의 어느날 밤.. 늦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면서 많은비가 내렸다.

"어휴.. 왠 비가 이렇게 내려.. 이제 수확긴데 농사 다 망치겠네.."

일찍 퇴근한 형이 쏟아지는 비를 보고 한마디한다.

"그러게.. 이렇게 비가올땐 부침개에 막걸리한잔하면 딱인데~"

"이자식이거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술타령하는거봐~ 이거 당신이 애 다망쳐놨어~ 어쩔꺼야~"

"호호~ 술은 일찍 배워도 괜찮아요~ 뭐어때~ 실수만 안하면되지~"

"그럼그럼~ 역시 형수가 통이커~"

"어쭈~ 이것봐라. 둘이 죽이 착착맞네. 그래~ 나없이 둘이 잘살아라~"

ㅎㅎㅎㅎ~

우우웅~~ 웅~~~~~

갑자기 테이블에 올려놓은 형의 폰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진동을 한다.

"예. 사장님. 예? 포천공장에요? 예.. 예 알겠습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예. 걱정마세요."

"왜? 무슨일있어요?"

"어.. 포천공장에 잠깐 다녀와야할거같아. 뭐하나 가져오면 되니까 오래걸리진 않을꺼야."

"비도 오는데..."

"괜찮아. 바람은 별로 안부니까"



형이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자 옆에서 도와주던 형수가 난데없이 "그럼 저두 같이가요~"라며 나선다.

"뭐? 당신이 거길왜가~ 애들은 어쩌구"

"우웅~ 나 아기낳구 외출도 한번 제대로 못해봤잖아요~ 답답해 죽겠어~ 바람도 쐴겸 같이가요~ 응?"

"담에 좋은날 제대로 데이트하자~"

"괜찮아~ 거기까지 갔다오면 그게 데이트지 뭐~ 정 늦으면 그냥 근처 모텔에서 자면되구~"



결국 형수는 박박 우겨서 형과 같이 가기로했다. 그리고 잠시만 형수에게 떨어뜨려놓으면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우림이도 데려가기로했다. 결국 집에는 나와 혼자 내버려둬도 방긋방긋 웃고있는 수연이만 남게됐다.

"쳇... 난 완전 보모구만.."

"헤헤~ 우리 이쁜 도련님~~ 담에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수연이 잘 부탁해요~~"

"아~ 몰라~ 치사해~"

내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세사람은 형의 차에 올랐다. 베란다로 형의 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돌아왔다.

수연이가 옹알이를 하며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대고있다. 너무 귀엽다..

수연이를 옆에 눕혀놓고 재우다가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링~~~"

.... 무슨소리야....

전화벨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지고있다. 뭐야.. 이시간에..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된시간이다.

아씨... 어떤 미친놈이...

"여보세요.."

"아~ 거기 신태진씨 댁이죠?"

"예.. 그런데요. 누구신데요?"

"예.. 전 의정부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김**경장인데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예.. 그런데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아.. 저기... 혹시 전화받으시는분이 신태진씨랑 무슨 관계신지.."

"동생인데요.."

"신태진씨 차 넘버가 서울**라 **** 흰색 소나타 맞죠?"

"예.. 맞습니다.."

"아.. 그게.. 신태진씨 차가 조금전 충돌사고가 났습니다.. 가족분이 좀 와주셔야겠는데요.."

하늘이 노래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린가..

"탄 사람들 어떻게 됐어요?!! 많이 다쳤어요?!!"

"아.. 일단은 이리로 오세요.. 택시 타시고 의정부시 **동 **국도로 오시다보면 현장이 보일겁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아~ 폰번호 하나 남겨주세요"

"아예.. 011-***-****요"

"예, 알겠습니다. 빨리오세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넋이 나가버렸다.

허둥지둥 옷을 입고 뛰어나가려다보니 잠에서 깨서 뒤척이는 수연이가 보인다.. 아~ 어쩌지... 이런 날씨에 수연이를 데리고 택시타고 다닐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연이를 보듬어안고 앞집 벨을 눌렀다.

....

"누구요.."

한참이 지난후에 앞집아저씨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늦게 죄송합니다.. 앞집 사람인데요.."

"이시간에 무슨일이슈.."

"저기.. 정말 죄송한데 집에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애기 좀 맡겨놓을수 있을까해서요.."

"뭐요?"

짜증에 톤이 확 높아진다. 잠 깨운것도 열받는데 갑자기 애를 봐달라니 짜증이 날만도 하다..

그때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앞집 아줌마가 머리를 내민다.

"앞집 총각이네. 무슨일있어?"

"예.. 아주머니.. 형이 교통사고가 난거같아서 좀 가봐야해서요.. 죄송합니다.."

"아이구~~ 그럼 얼른 가야지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양반이 사정도 안들어보고 그냥~~쯧~ 애기 얼릉 이리줘~"

아저씨에게 면박을 주고 아줌마가 수연이를 낚아채다시피 안아간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급해서.."

"어여가봐~ 아이구.. 별일없어야 할텐데..."

아직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로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경찰이 일러준 곳으로 빨리 가달라고 재촉을 했다.

택시기사도 대충 상황을 눈치챘는지 속도를 낸다.

...

"사고가 났나봐요.."

기사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아...예..."

"너무 걱정하지말아요.. 별일없것지.."

"예.. 그래야죠..."

경찰이 일러준 국도로 들어선지 얼마안돼 앞쪽에서 경찰처의 경광등 불빛이 깜빡이는게 보인다.

"저긴가 보네.. 아이구.. 저렇게 몰려있는거보니 사고가 제법 크게났나보네.. 별일없어야할텐데..."

입안이 바짝바짝마르고 심장이 쿵쿵뛴다..

택시기사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뛰어내렸다.

현장에는 119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몰려있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자 파란색 5톤트럭과 완전히 박살난 흰색 승용차가 보인다. 승용차위에는 소방대원 몇명이 절단기로 뒷자석쪽 천장을 잘라내고 있는게 보인다.

분명 형의 차다..

내가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들어가려하자 의경이 막아선다.

"사고차 가족인데요.."

의경은 내 얼굴을 보더니 순찰차로 다가가 누군가에게 뭐라고 얘기를한다.

"신태진씨 가족이십니까?"

아까 통화했던 사람인것같다.

"예.."

"저랑 통화하신분인거 같네요. 음.. 어른들은?"

"없는데요.."

"아.. 그래요.. 흠..."

"괜찮으니까 저에게 말씀하세요.. 형이랑 형수는 어디있어요?"

"하아... 참... 그게.."

쉽게 말을 못꺼낸다.

"... 형님께선 사고직후 사망하셨고... 그리고 뒷자석에 타고계시던 여자분은 차체에 눌려서 지금 구조작업중입니다.."

형이 죽었다.... 형이 죽었다.... 형이......



머리가 핑~돈다.. 휘청하는 나를 경찰이 잡아준다..

"애기도 있었을텐데...."

"예... 안타깝게도 애기도 이미..."



"됐어~~ 이제 조심해서 들어내~ 야임마~ 거길 잡으면 안돼!! 그래~ 거기잡어. 조심조심!!"

갑자기 구조작업중이던 소방대원쪽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형수를 들어내려나보다.

난 재빨리 차량쪽으로 달려갔다. 소방대원 두명이 조심스럽게 뒷자석에서 피범벅이된 형수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누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반응이 없다. 달려드는 나를 경찰이 제지한다.

"살아있어!! 빨리빨리!!"

구급대원의 다급한 외침에 난 경찰을 뿌리치고 달려갔다.

"누나!! 나야. 태우! 정신차려 누나!!"

소방대원 한명이 다시 나를 붙잡으며 달랜다.

준비되있던 앰블런스에 형수가 태워졌고 나도 같이 올라탔다.

급박하게 몇개의 링겔이 형수의 몸에 꽂혀졌다.

앰블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린다. 호흡이 너무 가늘다..

떨리는 손으로 피묻은 형수의 손을 잡았다. 차다...

누나....

하느님.... 제발..... 난 절박하게 기도를했다..

10분여를 달려 병원에 도착할즘 형수가 힘겹게 눈을떴다.

"누나!! 정신차려. 나야 태우"

형수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않는지 힘겹게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나를 찾으려했다. 난 얼굴을 형수의 얼굴에 바짝 붙였다.

그제서야 내 존재를 인식했는지 미약하게 내손을 쥐어온다.

"누나... 정신차려.. 이제 병원다왔어.. 조금만힘내.."

형수는 계속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움찔움찔했고 귀를 바짝 가져갔지만 거의 들리지 않았다.

"누나.. 걱정마.. 나중에 얘기하면되잖아. 응?"

그녀의 입이 몇번더 움찔거리더니 이내 포기했는지 멈춘다. 그리고 힘겹게 손을 들어올려 내 얼굴을 만진다. 피투성이인 손이 너무 애처로워 내손으로 꼭쥐고 내 뺨에 갖다대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눈물은 금새 핏물이되어 볼을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뺨에 올려져있던 그녀의 손에서 급격하게 힘이 빠져나간다.

"누나?"

"누나... 누나....!!!!!!"

구급대원이 급하게 누나의 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허사였다.



난 대성통곡을 했다..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것같았다.

이 빌어먹을 하늘아!!! 차라리 날 데려가라!!!!





난 며칠동안 완전히 정신이 나가있었다. 뭘해야할지 어떻게해야할지 몰랐다. 아니 그런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나마 형회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어떻게 장례는 치렀다. 사장님은 내내 자기때문에 이렇게 된거라며 자책을 하셨지만, 그런것도 내 관심밖이었다.

넋이 나가있는 내가 걱정이됐는지 수정이가 내내 붙어다녔지만, 그것조차 귀찮았다. 가지않겠다고 버티는 수정이를 억지로 돌려보내고 거실에 누웠다.

형과의 기억들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고아원에서 나 대신 매를맞고 자기 먹을걸 몰래 나에게 건네던 형.. 학교도 가지 못하고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자지못하는 중노동을 묵묵히 감내하던 형.. 언제나 자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던 형...

항상 웃어주던 형수.. 너무 이쁜 우림이.. 다들 너무 보고싶다..

다 흘렀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주르륵 흘렀다.

이제 어쩌지.... 어떻게 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않는다...



맞다..

죽으면 되는구나.. 나도 세사람을 따라가면 되겠네..

갑자기 머리속이 환해지는것같다. 하하.. 왜 이생각을 못했지..

비적비적 걸어서 베란다로 걸어갔다. 14층.. 우중충한 하늘이 죽기에 딱 좋은 날씨인거같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는데 희안하게 이때는 겁이 나지 않았다. 한발을 난간에 올렸다.



"띵동띵동" 갑자기 벨이 울린다. 귀찮다.. 다른발을 마저 올리는데 다시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띵동띵동띵동" 짜증날 정도로 계속 울려댄다.

하아... 올렸던 다리를 다시 바닥에 내리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앞집 아줌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연이를 안고서있다.

"아이구~ 총각 있었네..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야 그래.. 총각도 다죽게생겼네~ 이걸 어째~~"

수연이... 맞다.. 수연이가 있었지... 깜빡 잊어버렸다.. 수연이도 데려가야지...

"저기.. 수연이 이리.."

"응? 아이구~ 지금 정신에 애까지 어떻게 데리고 있을라구~ 당분간 내가 보살필테니 걱정말어~ 일단 우리집에와서 뭐라도 좀 떠~ 이러다가 줄초상 치겠네.. 얼릉와"

"아닙니다.. 괜찮아요.. 수연이 이리 주세요.."

몇번 더 권하던 아줌마는 내 고집에 결국 수연이를 넘겨줬다. 내품에 안긴 수연이가 꺄륵웃는다.

"아이구~ 요녀석이 지 삼촌 알아보고 반갑다네.. 불쌍해서 어쩌누.."

아줌마가 눈물을 훔친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다시붙잡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부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고마운분이다.. 목례를하고 문을 닫았다.



부모없는 삶이 어떤건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알면서 이 핏덩일 혼자 남겨둘뻔했다..

수연일 안고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연인 그저 방긋방긋 웃고있을뿐이다. 그래.. 같이가자..

의자를 가져다 난간앞에 놓고 그위에 올라섰다.

"엄.마."

응?

수연이가 옹알이를한다. 그런데 분명 그 소리가 엄마로 들렸다.. 잘못들은건가.

수연이를 빤히 쳐다봤다. 형수를 꼭 닮은 눈매..

그눈을 보자 그날밤 현관을 나서며 "수연이 잘 부탁해요~"라던 형수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거야..

하마터면 나는 형수의 마지막 당부를 져버릴뻔했다.



그래.. 살자.. 형은 날위해 그렇게 죽을고생을 했는데 난 두사람의 아이를 지켜줄 생각은 못하고 죽을 생각만 하다니.. 병신.. 니가 그러고도 남자냐..



정신을 차리기위해 샤워를하고 밥을 챙겨먹었다.



수연이를 옆에 눕혀놓고 바닥에 앉아 우리 두사람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을했다. 걱정이 아니라 냉철한 고민이다. 일단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아직 어린데다 젖먹이 수연이도 딸려있다. 수연이를 데리고 일을 다닐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보육원 같은곳에 맡기기도 부담스럽다.

첫째, 수연이를 보살피면서 할수 있는 일이어야한다.

둘째, 수연이를 제대로 키울수 있을만큼의 수입이 되야한다.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시킬만한게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그래.. 그거면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부동산에 아파트를 내놨다. 형이 힘들게 장만한 집이지만, 사고가 형의 차가 중앙선 침범을 한것이라 보험료도 얼마받지 못했기에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래도 아파트 위치가 좋아서 구매자는 금방 나타났고 우리가 살집이 구해지는대로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



다음은 학교를 정리하기로했다. 수연이를 데리고 학교를 다닐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사 학교에서 배려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난 돈을 벌어야한다. 지금 나에게 학교는 사치다.

수연이를 안고 아파트를 나서자 우리를 알아본 동네 아줌마들이 안타까워한다. 여기저기 훌쩍거리며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수연이를 안고 학교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내 사정을 모르는 여학생들은 수연이가 귀엽다고 안아보자고 난리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담임선생님이 뛰어오시며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태우야.."

다른 선생님들도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시는게 느껴졌다.



상담실 소파에 수연이를 눕히고 선생님과 마주앉았다.

"많이 힘들지.. 선생님이 아무 도움도 못되고 정말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이제 괜찮아요.."

"그래.. 형을 위해서라도 힘내야지.. 우리 태우는 분명 잘해나갈거라 믿어.. 선생님이 도와줄께"

"감사합니다... 그리구 저.. 자퇴..하려구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퇴라니. 그건아냐. 아니 안돼!"

선생님은 완강하게 반대를 하셨지만, 내 뜻이 확고한걸 아신후에는 결국 받아들이셨다.

"그래 이제 어떻게 살 생각이니?"

"일단 서울은 떠나려구요.."

"흠... 어디 갈데라도 있니?"

"아직은 안정해졌는데 알아봐야죠.."

선생님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기가 아무런 도움을 못준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결국 내가 선생님을 위로하는 꼴이되버렸다.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라고 하셨지만, 완곡히 사양하고 학교를 나섰다. 친구들에게 굳이 이런모습을 보여주고 싶지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폰이 울린다. 수정이다..그래도 날 많이 걱정해줬는데 수정이에게는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겠다.

"여보세요"

"야이 나쁜놈아~~!!"

냅다 고함이다.

"응...."

"나쁜놈...엉~~엉~~"

수정이는 나쁜놈만 반복하며 펑펑 울었다..

"흑... 너 나쁜생각하는거 아니지?"

"바보.. 그럴거면 일부러 학교까지 갔겠냐.."

"흑.. 내가 좀 도와주면 안돼?"

"생각해보니까 나 지금까지 너무 다른사람들에게 기대서 살아온거 같애.. 이번엔 다른사람 도움없이 내힘으로 헤쳐가고 싶어.."

"피.... 너 쬐금 멋있다.."

"내가 언젠 안멋있었나~"

"훌쩍.. 암튼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알았지?"

"그래.. 알았어.."



이제 어디로 옮길지가 남았다.

여기에는 너무 기억이 많다.. 형, 형수, 우림이, 지연이.. 당분간은 이 사람들을 잊고 수연이만 생각해야한다. 모든걸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려면 생활터전도 새로운곳이 나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사장님(형회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부산에 조그만 아파트를 구할수 있었다. 사장님이 돈을 대주시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마지막으로 형과 형수, 우림이가 있는 산소를 찾았다. 이곳도 김사장님이 자기 선산의 한쪽을 내주신것이다. 선산을 내준다는게 쉽지 않은일일텐데 정말 고마운분이다..

"형.. 누나.. 나왔어.. 거긴 안추워?"

"나랑 수연인 걱정말고 우림이랑 잘 지내.. 수연이는 내가 정말 잘 키울꺼야.. 흑..흑.."

"우림이는 엄마한테 안떨어지려고 했는데 같이있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다.. 우림아.. 엄마아빠 잘부탁해.. 누나는 삼촌이 잘 돌볼께.."

"나 갈께.. 흑...흑... 그리고 이제 안울꺼야.. 오늘 마지막으로 우는거야.. 알았지? 어어어엉~~~"

"우앵~~~"

내 울음소리에 품에 안겨있던 수연이가 덩달아 울음을 터트린다..



이사 당일..

큰짐은 부산으로 미리 보냈고 자잘한 짐들을 이사트럭에 옮기는데 낯선 상자가 하나 보인다. 백과사전 크기의 이쁜상자.. 뭐지?

상자를 열어보자 4개의 다이어리가 있다. 제법 세월의 풍모가 느껴지는것부터 최근까지 사용하던것으로 보이는것까지..

하나를 꺼내 뒤적이니 낯익은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형수...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분명히 형수의 글씨체다. 아마 형수가 사용하던 다이어리들인가보다. 거기엔 형수가 아주 어릴때부터 써온 일기가 적혀있었다. 가장 최근의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의 예쁜 다이어리.. 그리고 거기엔 함부로 열어보지 말라는 듯이 조그만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자물쇠? 열쇠? 혹시.. 얼른 형수가 결혼식날 줬던 열쇠모양의 팬던트가 달려있던 목걸이가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열쇠를 밀어넣어보자 자물쇠가 딸칵하고 열린다.



이상하다.. 형수는 왜 일기장의 열쇠를 나에게 준걸까? 자물통까지 채워진 일기장의 열쇠를 왜 하필 나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읽어보란건가??

떨리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넘기다가 퍼뜩 열쇠를 건네면서 형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보물상자는 나~~중에 줄께요"

나중에... 분명히 그말을 할때 형수의 억양은 아주 먼 훗날을 얘기하는것 같았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닐거라는 예감이 든다.

다이어리를 조심스래 다시 상자에 넣었다.

그래..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하지말자. 수연이 잘키울것만 생각하자...



수연이 때문에 나는 기차를 이용해야했다.

서울역을 떠난지 얼마안돼 창에 겨울을 재촉하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안녕, 서울아.. 안녕, 형.. 안녕, 누나.. 안녕...."







응응씬이 없어서 실망하셨을거 같네요~^^; 아마 다음편에는 나올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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