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내딸 에이미 1부
2018.04.14 19:52
사랑스런 내딸 에이미 1부
나는 전화를 끊고 호텔에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었다. 나는 지난 주로 열여섯이 된 딸아이 에이미와 통화하고 있었다. 벌써 3년만이다. 지금은 법적으로만 아내인 제인과 함께 옛집에서 살고 있는 딸아이에게 간신히 기회를 보아 전화를 했던 것이다. 딸아이가 열여덟이 되기까지 모든 접촉이 금지당한 - 전화나 편지까지도 - 내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집을 떠난 지 지난 삼년 동안 집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에이미를 만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에이미는 아내에게 친구 타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거짓말을 했고 물론 타미의 부모가 잠들면 타미가 이곳 까지 태워다 주고 또 다시 데리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에이미는 그럴듯하게 둘러대는데 소질이 있는 얘라서 이번에도 일이 잘 되었다.
나는 발코니로 나와 난간에 팔을 기대고 친숙한 샌프란시스코의 만위로 드리워진 지평선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오클랜드의 잭 런던 스퀘어의 하이야트 호텔 12층에서의 정경은 정말 특별한 맛이 있었다. 6월의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을 지켜 보면서 나는 20년 전 버클리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3년전 그날, 10월의 일요일 오후 무슨 일이 시작되고 벌어졌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사라져가는 토종 캘리포니아 사람이다. 1957년 캘리포니아 남부의 추알라 비스타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우리 가족은 내가 여섯 살 때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만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대학 영문학 교수인 아버지와 함께 이곳 버클리에서 자랐다. 그리고 능력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UC 버클리를 다닐 수 있었고 부모님은 내가 집에 살면서 학위를 따기를 바라셨다.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붐이 일어나던 1977년 5월 나는 컴퓨터 분야의 학위를 땄고 친구인 래리 얼트와 함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아파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마침 때를 잘 만나서 단 6개월만에 텔레그래프 로드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 5명의 직원으로 제대로 된 사업을 펼칠 수 있었고 18개월 후에는 12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또 나는 지금의 아내인 제인 심슨과, 래리는 다이앤과 각각 결혼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서 제인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영어를 전공한 그녀와 나는 서로 공통의 친구가 있었고 또 아버지가 영문학부의 주임 교수였기 때문에 가끔씩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과 파티가 있을 때마다 거의 모습을 드러냈고 나 또한 그곳에서 귀여운 여자 얘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참석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전공한 얘들을 못생기고 이상한 부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 학기의 파티에서 만나서 적당히 친해지게 되었다. 제인은 다소 컴퓨터를 쓸 줄 알았고 또 재미있는 아이였다.
우리 회사는 유능한 사무실 관리자가 필요할 만큼 커졌고 마침 제인이 지원해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제인이 일하게 되어 기뻤는데, 우선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고 또 많은 행정적인 일거리들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래리에게도 좋은 일이어서 우리는 장부정리나 일에 필요한 경비 관리, 또 세금 계산 같은 일들에서 벗어나 좀더 창의적이 될 수 있었고 또 동시에 작은 사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인은 숫자나 세금 양식등에 뛰어나고 우리가 고용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완벽한 직원이었다. 문제는 일 년 쯤 지나자 그녀가 이 일에 싫증을 내게 되어 우리의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문을 배우러 로스쿨에 다니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로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일 년 반 후 제인은 졸업을 했고 우리가 몇 가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시점에 다시 합류를 했다. 회사는 이미 50 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20명은 우리 상품에 대한 생산과 물류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1981년 중반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샌디에고로 생산과 물류 분야를 옮겼다. 그리고 그해 5월 25일 우리의 딸 에이미가 태어났다.
제인은 산고를 많이 치루어서 에이미가 태어난 후 의사는 또 다른 아이를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제인은 내가 정관절제 수술을 하기를 강하게 고집했고 나 또한 그에 반발해서 몇 주 동안 크게 싸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인이 로스쿨을 마친 이래로 엉덩이에 통증이 있었는데 혹시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나는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결국 제인은 마지못해 피임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그것을 강요했다고 생각하여 다소나마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썩 이유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했고 어쨌든 임신이 위험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결국 그녀가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나에게 요구하지 않은 것은 매우 합리적이었다고 느껴졌다.
난관 봉합술이나 정관 절제술이냐 하는 논쟁은 실제로 우리 결혼에 긴장감을 가져왔다. 심지어는 우리가 일을 할 때 공적인 사이가 되는 것 마저 힘들 지경이었다. 래리는 결국 제인을 사무실에 두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고 1983년 6월 제인은 다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로펌(law-firm)중의 하나에 합류했다. 새로운 일을 가지게 된 제인은 좀 잠잠해졌고 우리의 사업도 잘 되어 제인과 나는 버클리 힐에 있는 큰 집으로 이사했다.
1988년 크리스마스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부모님의 죽음은 나에게 큰 손실이었고 슬픔속에 여섯 살 된 딸 에이미에게 (제인보다는) 더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미는 무척 유쾌한 작은 아이로 아름답고 발랄했다. 딸아이의 머리칼은 크레용 상자에서 밤색(burnt umber)이라고 불리우는 색깔로 변해갔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인 줄리(래리의 딸로 에이미보다 며칠 늦게 태어났다)가 burnt umber의 발음이 안 되어 bummer로 말했고 에이미는 머리색깔이 빨간빛을 띤다고 여겼다.그녀는 새로운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일했고 반대로 나의 일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많은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를 고용했고 나는 단지 회사의 계획을 세우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주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인터넷과 전화로 대신 일을 처리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내가 에이미를 돌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에이미와 제인은 점점 더 멀어졌다. 에이미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그 얘 얼굴을 보는 시간이 줄어 들자 나는 더더욱 딸아이가 그리워졌고 그 얘가 없는 내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닫게 되었다.
회사가 커짐에 따라 나는 펜실베니아의 MBA과정을 등록했다.
다음 2년간 우리 집안은 무척 바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동안 체증에 시달려서 30마일 떨어진 파로알토로 갔고 제인은 에이미가 학교에 갈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대신 에이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내가 집에 있어야 했고 아내는 늦은 일과를 보충하러 7시 8시 까지 근무를 했다. 에이미와 나는 둘이서 저녁을 먹고 비디오를 보고 또 제인이 올 때 까지 책을 읽어준 후 에이미가 잠자리에 들고서야 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딸아이를 돌보는 것이 전혀 싫지 않았는데 그만큼 에이미가 사랑스럽고 밝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에서 배우들이 말하기 전에 그대로 흉내내 보다가 서로 웃곤했다. 아내는 바보같다고 하며 그것을 싫어했는데 결국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지 않았다. 1991년 MBA과정을 끝내고 집안일은 당분간 정돈이 되었다. 사업도 잘되어 어느날 래리는 은퇴하여 회사의 지분에서 생기는 지분반으로 산타바바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에이미는 줄리가 떠나자 무척 그리워해서 여름방학초 3주는 에이미가 산타바바라로 가고 또 개학하기전 3주는 줄리가 우리를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두 아이는 몸이나 성격이 몹시 다른데도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려서 함께 있을 때는 친자매같았다.
줄리가 이사한 후 에이미는 전보다 더 나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딸애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좀 괴이한 재능을 개발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서로의 말을 완성시키는 것 따위였는데 그것은 무척 아내를 화나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는 아내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1994년 가을 일은 시작되고 있었다.
에이미는 열세살 오개월의 나이였고 내 눈에 보기에 이제 막 아름다운 여자로 접어들려는 초입에 들어있었다.
내가 서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풋볼을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에이미가 전속력으로 방안에 뛰어들었다.
"아빠 내 머리좀 보세요. 침대에 있는 선반에 책을 올려놓고 있는데 선반 끄트머리가 벗겨져서 머리위로 떨어졌어요. 너무 아파요. 아빠가 피나는지 한 번 봐주세요"
에이미는 늘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늘 방청소해라 얌전해라 하는 아내와 달리 난 곧잘 딸아이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래서 에이미는 내가 엄마보다 주위를 끌거나 용돈을 더 타내기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미는 내 무릎위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자신의 머리위를 보게했다. 그애는 무릎까지 오는 티셔츠에 신발없이 양말만 신고 있었는데 내 앞쪽으로 머리를 기대자 늘어진 셔츠가 벌어져서 나는 지금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예쁜 작은 젖가슴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아내가 나나 에이미가 벗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딸애의 벗은 모습을 세 살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에이미의 가슴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작은 오렌지 사이즈에 가벼운 핑크빛 방울모양의 젖꼭지, 희미하게 흔적을 보이는 엷은 파란색 정맥들. 딸애의 젖꼭지는 유방의 꼭대기에서 나를 향해 솟구쳐 있었다. 에이미가 머리의 상처난 부분을 보이기 위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자 두 개의 작은 가슴이 부풀어 올라서 그 사이가 벌어졌고 젖꼭지는 더욱 선명하게 솟아 올랐다.
"봐요. 아빠. 여기에요. 혹이 난 것 같은데 피도 나요?"
나는 딸애의 머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애의 어린 가슴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즉시 대답하지 않자 딸애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자신의 셔츠속을 훔쳐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얼른 눈을 때었으나 에이미는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렸다.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을 때 나는 그애의 젖가슴이 단단해졌다고 맹세할 수 있다! 에이미는 재빨리 뒤로 당겨 앉아서 이번에는 머리를 앞으로 수그렸다.
"이봐요. 아빠. 정말 아파요"
내가 그애의 머리를 쳐다 보았을 때 나는 내 남성이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정신좀 차려라, 지금 에이미 앞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에이미는 벌써 열세살이고 작년에 초경을 했으니 가슴이 나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에이미의 머리를 살펴 보았지만 작은 혹이 있을 뿐이고 어디에도 피가 난 자국은 없었다.
"애야 괜찮다. 내가 뽀뽀 한 번 해 주면 금방 나을거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아이의 머리 위에 살짝 뽀뽀를 해 주었다.
"자 이제 축구 좀 보도록 해 다오. 너는 가서 옷 갈아입고 저녁 먹을 준비해야지."
"아이 참. 아빠는 늘 날 어린애 취급한다니까. 아빠는 딸래미 보살피는 것보다 축구보는게 더 좋은거죠?"
에이미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미가 내 무릎에서 내려올 때 그 짧은 시간에 잠깐이나마 그 애의 팬티가 보였다. 에이미는 앞에 레이스가 있는 하얀 면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분명 음순의 아웃라인과 작고 까만 털의 흔적이 팬티에 비쳐 보였다. 그애는 내 무릎에서 내려오자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나를 쳐다 보았는데 마치 내가 자신의 가랭이 사이를 봤는지 안 봤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에이미가 방 밖으로 나갈 때는 나의 착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들어올 때 보다 더 엉덩이를 흔드는 것 같았다. 반쯤 단단해진 자지는 수그러들었지만 갑자기 딸애의 엉덩이가 몸의 다른 부위와 균형잡히게 잘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미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눈빛으로-다 큰 여자의 호기심어린-나를 쳐다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조깅을 하면서 에이미에 대한 나의 새로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분명 딸애에게 성욕을 느끼고 있었고 저녁 내내 딸애의 몸에서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딸애는 내 눈 앞에서만 움직이려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다행히도 아내는 로펌에서 파트너가 되기 위해 열을 쓰고 있었으므로 이런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에이밍에게 집안에서 뛰어다니지 말고 앉아서 TV를 보거나 가서 자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에이미는 아내가 잠깐 부엌으로 간 사이에 나에게 와서 굳나잇 키스를 했다. 그애는 잠잘 때 입는 셔츠로 다시 갈아입고 있었고 몸을 수그릴 때 낮과 같이 가슴이 다 들여다 보였는데 젖꼭지가 지금은 훨씬 더 진한 핑크빛으로 변했고 단단해 보였다. 마치 끝이 주름지고 도드라진 연필 끝에 달린 작은 지우개 같았다. 딸애는 나에게 살짝 기대서 늘 하던대로 볼에다 하지 않고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조금 뒤로 물러섰는데 그애는 잠깐동안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엄마 잘 자 하고는 계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나는 조깅을 하면서 어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느낌을 갖는 걸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딸아이가 자람에 따라 이런 감정을 가지는 걸까? 이것이 소유욕이라면 내가 딸아이를 여자로서 소유하고 싶어하는 걸까? 나는 늘 에이미에 대해 보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 아이를 성적으로 느끼게 되자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와 딸애는 지금껏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았는데 섹스라고 해서 다를까? 만약 그애가 날 유혹하려 했다는 내 짐작이 맞는다면 아니면 적어도 나를 그런 연습을 하기 위한 안전한 상대로 여긴다면 분명 나에게는 즐거우면서도 편하지 않은 여행같은 느낌이 들 것 이었다. 에이미는 분명 자기가 갖고 있는 성적매력의 힘을 인식하게 될 것 이고 그 여행이 진행이 되어 갈수록 더 모험적으로 나올 것이다. 나는 어제 오후 이후로 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딸애의 벗은 몸을 더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그애의 꽁무니를 쫒아다니거나 아니면 딸애가 내 방에 들어올 때 마다 두근거리며 훔쳐보면서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딸애가 모르는 방식으로 그애의 작고 섹시한 몸뚱아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기로 했다.
2마일 정도 달리고 나서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서두르지 않고, 또 안전한 방법으로, 에이미에게 눈치채이지 않는 선에서 그애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리 집의 화장실이나 침실문은 늘 닫혀있고 또 화장실 문은 늘 잠겨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집의 누구도 노크를 하지 않고는 침실문을 함부로 열지 않도록 되어있었고 또 우연을 가장하여 딸애의 방에 뛰어든들 내 속셈만 탄로날 뿐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딸애 방 창문도 생각해 보았지만 늘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또 2층이라 실효성이 적었다.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나와 제인이 집에서 사무를 보기 위해 이용하는 방이 있었는데 마침 그 방이 화장실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늘 조깅을 마치고 에이미를 깨운 후 에이미가 샤워하는 동안 그 방에서 조간 신문을 보곤 했다. 그리고 큰 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커피나 토스트를 만들어 막 일어난 제인이 샤워를 마치기를 기다리곤 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해 볼 때 결국 해결책은 에이미가 샤워를 하는 화장실에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바로 위층 에이미가 쓰는 화장실로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잠시 살펴보는 동안 에이미가 어제 입었던 레이스 달린 하얀 팬티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딸아이의 보지가 맞닿는 부분을 보았다. 곧 희미한 얼룩이 눈에 띄었고 나는 그 부분을 코로 가져가 에이미의 달콤한 처녀의 내음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전에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었고 조금 변태짓 같았지만 곧바로 내 물건은 단단해졌다. 나는 등뒤의 문을 닫고 반바지를 내린 후 자지를 꺼내 놓았다. 딸아이의 팬티에 얼굴을 묻고 또 얼룩이 진 부분을 혀로 핱으면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근사한 자위를 했다. 많은 양의 정액이 세면대로 튀어 올랐고 이런 딸아이에 대한 망상은 밤는게 까지 계속되어 마음속을 애태울 뿐이었다.
사정이 끝난 후 제 정신을 찾자 화장실 벽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바라는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외풍이 있는 편이어서 아침에 샤워할 때 무척 춥기 때문에 에이미는 지난 겨울 큰 방 화장실처럼 벽에 달린 히터를 달아달라고 보채곤 했었다. 그 히터를 지금 달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다. 나는 정액을 깨끗이 닦아낸 후 화장실을 나왔다. 나는 2층을 가로질러 바로 에이미의 방으로 가서 가볍게 노크를 해서 아이를 깨웠다.
"들어와요 아빠"
딸아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열고 안을 들어다 보았다. 에이미는 빨간 빛이 나는 밤색 머리칼을 베개위에 풀어놓은 채 똑바로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리고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바로 딸아이의 몸위로 뛰어올라 미친 듯이 온몸을 탐하고 싶었다. 단지 그 본능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 애가 내 딸 에이미라는 것 뿐.
"아빠. 잠깐 이리 와서 얘기좀 해요"
나는 바지에 정액자국이 묻어 있었고 또 내 물건이 아직 반쯤 단단해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가기 싫었다.
"애야. 지금 조깅을 하고 와서 땀이 범벅이란다. 자 얼른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먹어야지."
나는 그냥 문가에 기대어 말했다.
"알았어요 아빠"
에이미는 침대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그때 얼핏 딸애의 보지를 볼 수 있었다. 분명 아까 화장실에서 본 팬티를 벗고는 다시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문가에 서 있었고 딸애가 다가와 나를 붙드는 순간 우연히 젖가슴이 내 팡에 와 닿았다.
"빨리요 아빠. 샤워를 하고 나온 여자에게 아침식사를 마냥 기다리게 할 거에요?."
에이미는 눈썹을 내리깔며 지긋이 나를 올려다 보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애가 그렇게 허스키하고 섹시한 톤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분명 같이 본 올드 무비의 대사를 흉내낸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내 남성을 다시 곤두서게 했다. 난 곧 뭔 일을 벌이거나 아니면 남은 일년 내내 이렇게 발기한 채로 지내야 될 것 같았다. 내가 화장실에 히터를 달거라고 말하자 에이미는 나에게 달려들어서 두 팔로 꼭 껴안고는 입술에 쭉하고 키스를 해댔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최고에요. 난 아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에요"
에이미는 내 목 근처에서 나직이 소근거렸다. 그애의 음부는 이제 내 넓적다리를 누르고 가벼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잠시후 에이미는 나를 밀치고 휙 돌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히터를 설치해 주는 데에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음을 인정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그것을 합리화시켰는데 즉 이런 일로 딸아이의 정신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내 소망을 이룰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지난 18시간 동안 나는 딸아이에 대한 망상에 미친 듯이 빠져있었다.
그 날 나는 히터를 사서 딸아이와 아내가 저녁에 쇼핑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 히터의 뒷부분에 직경 1인치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내가 사무를 보는 방 벽에는 전기 스위치가 달려있는 스위치판이 있었는데 나는 전선을 제거하고 스위치 박으의 뒷면에 구멍을 뚫어 이미 히터에 뚫은 구멍과 일직선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에이미의 화장실로 가서 구멍이 그쪽에서 눈에 띄는지 살펴보았다. 내 사무실에서 불을 켜놓지 않는 한 눈에 띌 염려는 없어 보였다. 사무실에서 보는 전경은 꽤 괜찮았는데 바로 화장실 벽의 거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거울을 통해 화장실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여다 보였다.
다음날 조깅을 하면서 내가 벌이는 일에 대한 도덕적 자책과 함께 혹시나 에이미나 제인에게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에이미와 내가 간직해온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한 번에, 영원히 무너져내릴까? 딸애의 나체를 훔쳐보는 아버지를 그애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처음 1마일째를 달리면서 모든 도덕적 문제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고 내가 벗은 몸을 좀 본다고 해서 설마 딸아이에게 무슨 잘못이야 생기겠냐는 식으로 생각했다. 나는 많은 가족들에게 이런 식의 격의 없이 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했고 오히려 아내가 이런 자연스러운 일들을 불합리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합리화시켜 나갈수록 나와 딸아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아내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아내는 침대에서 전혀 능동적이지 못했고 먼저 섹스를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내가 조금 색다른 행위를 요구하면 마지못해 받아들이곤 했다. 내가 정관수술을 거부한 이래로 이런 일은 더 심해졌으며 제인이 파트너가 되기위해 매달려온 지난 한 해 동안은 아예 관계조차 가지지 않았다. 나는 에이미의 눈에서 아내보다 훨씬 더 완전한 포용력과 사랑을 보았다. 만약에 곧바로 에이미의 방으로 들어가 나를 위해 옷을 벗어달라고 하더라도 그애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그것은 내가 내 감정을 추스릴 때까지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적당한 방법이 아니었다.
물론 열세살 짜리 딸애의 알몸을 훔쳐보다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만일 히터 뒤의 구멍을 에이미가 알아차리고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나쁜 것은 제인이 발견할 경우다 .난 분명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딸을 잃고 말 것이다. 게다가 지금껏 내 자신을 남의 사생활이나 엿보는 놈으로 여긴 적이 없었고 또 그것이 이처럼 자극적으로 생각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현 상태로는 에이미의 알몸을 본다는 것에 모든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쨋든 그 날 아침 나는 조깅을 하면서도 마음 속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번 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난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난 곧바로 사무실로 가서 스위치 판을 뜯어내고는 다시 에이미의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켜고 히터의 뒤로 구멍이 보이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결과론적으로 구멍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보더라도 그 흔적조차 쉽게 찾기는 힘들었다. 이번에는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불을 끄고 보자 아까보다는 훨씬 눈에 잘 띄었다. 결국 화장실에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실의 스위치판을 뜯어낸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지금은 밤이 긴 계절이어서 에이미는 일찍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불을 키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스위치판을 원래대로 해 놓고는 에이미를 깨우러 갔다. 나는 점잖게 노크를 하고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했다.
"알았어요. 아빠. 금방 일어날께요"
에이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향하는 판자를 떼어내었다. 화장실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여전히 잘 보였다. 하지만 만일 에이미가 화장실에 불을 켜지 않고 들어온다면 얼른 판자를 덮어야 했다. 벽에 얼굴을 붙이고 눈을 조그만 구멍에 들이댄 체 서 있는 내 가슴은 쇠로된 해머소리같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고 입안은 바짝 말랐다. 드디어 에이미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난 갑자기 용기를 잃고 벽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구멍에다 눈을 갖다댔다. 곧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또 화장실 안이 갑자기 환해졌다. 에이미가 내 시야에 들어와서 세면대 앞에 서더니 앞으로 기대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긴 축구셔츠에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다(에이미는 발이 차다고 늘 불평한다) 에이미가 앞으로 기대어 있자 셔츠가 위로 밀려올라가서 핑크빛의 귀여운 엉덩이 끝부분을 살짝 드러내었다.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내 자지는 부풀어 올랐다. 딸아이 몰래 이렇게 은밀한 부분을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의 물결이 밀려왔다. 나는 비로소 사람들이 몰래 카메라 같은 것에 왜 관심을 갖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벌거벗은 몸을 본다든가 하는 차원을 떠나서 피관찰자 몰래 그들이 대중앞에 내 놓는 가식적인 얼굴 밑의 매우 사적인 부분까지도 보고 또 그들 자신도 모르는 것까지 속속들이 알아내는 이런 행동이 마치 신이나 된 것 처럼 느끼에 하는 것이다.
에이미는 다시 일어나서 변기 쪽으로 가더니 돌아서서 셔츠를 올리고는 변기위해 앉았다. 그러면서 가랭이 사이의 털이 얼핏 보였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애는 몸을 조금 앞으로 수그렸고 곧 오줌누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일을 다 본 듯 화장지를 조금 뜯어내더니 가랭이 사이를 닦아냈다. 이번에는 그곳의 털을 좀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에이미는 필요이상으로 오랫동안 닦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물을 내린 에이미가 입고 있던 셔츠의 밑부분을 잡더니 머리위로 끌어당겼다. 난 거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맙소사, 딸아이는 몸에 걸친 거라고는 이제 양말 한 짝 뿐이었다! 그애는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히터쪽으로 걸어왔다. 그때 얼마나 좁은 구멍에 두 눈을 들이밀고 있었던지 누가 나를 향해 총을 쏘아도 그 자세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이 어린 소녀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는 헝클어져서 얼굴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 어깨까지 내려오기도 하였다. 노브라 노팬티로 잠을 자서일까 가슴과 엉덩이에는 자국없이 부드러운 아이보리색의 피부만 있었다. 작은 유방은 탱탱하며 사랑스러웠고 차가운 공기를 맞아서 젖꼭지는 단단해져 있었다. 허리는 잘록했고 엉덩이는 이제 막 여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다리는 놀라리만치 무척 길어서 몸의 삼분지 이는 될 것 같았다. 단지 길 뿐만 아니라 속이 여문 듯 충만해 보였고 단단하면서도 무척 부드럽게 보였다. 내 시선은 곧 에이미의 허벅지로 내려갔다. 그곳에 딸아이의 아름다운 꽃잎이 있었다. 조금 돋출된 언덕에 빨간 빛 나는 밤색의 수풀이 우거져서 섬세한 균열을 감싸고 있었다. 그애의 허벅지는 그처럼 작은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조그마한 비밀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내 손은 본능적으로 바지속으로 들어가서 무릎아래로 끌어내리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단단해진 자지를 꺼내놓았다. 나는 에이미의 아름다운 몸을 바라보며 자지를 움켜쥐고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그애가 히터를 켜기 위해 이쪽으로 오자 이제 한발짝 정도나 될까 하는 거리에서 클로즈업된 유방을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입을 내밀어 이처럼 아름답고 작은 젖가슴을 빨고 싶었다. 히터가 돌아가서 따뜻한 공기를 가슴위로 쏘아내자 딸애는 낄낄대면서 왼쪽 젖꼭지를 잡고는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살짝 비틀었다. 부드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저편으로 가서 양말을 벗어던지고는 샤워기 아래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폴짝 폴짝 뛰는 통에 젖가슴은 흔들렸고 또 근사한 엉덩이도 볼 수 있었다. 에이미는 흔히 말하는 bubble-ass 즉 작고 단단하며 암초처럼 튀어나온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저 엉덩이를 타고 뒤에서 범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애가 샤워기 물줄기를 조절하러 몸을 앞으로 숙이자 가랭이 사이가 그대로 들어다 보였다. 이렇게 다리를 벌리고 서있자 꽃잎은 살짝 벌어져서 그 속의 구멍까지 들여다 보였다. 이때 나는 벽을 향해 많은 양의 정액을 뿜어댔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제법 커서 걱정이 되었으나 물줄기가 계속 흐르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사정을 향하면서 "널 갖고 싶단다 에이미야. 이건 너를 위한 거다" 라고 중얼 거렸다. 딸아이는 이제 욕조 속으로 들어가샤워실 커텐을 쳤다. 난 자지를 손에 쥔 채로, 몹시 지쳐서 의자위로 무겊게 주저앉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 딸아이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이제 남은 일은 에이미를 범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문제는 왜 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을 벌여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호텔에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었다. 나는 지난 주로 열여섯이 된 딸아이 에이미와 통화하고 있었다. 벌써 3년만이다. 지금은 법적으로만 아내인 제인과 함께 옛집에서 살고 있는 딸아이에게 간신히 기회를 보아 전화를 했던 것이다. 딸아이가 열여덟이 되기까지 모든 접촉이 금지당한 - 전화나 편지까지도 - 내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집을 떠난 지 지난 삼년 동안 집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에이미를 만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에이미는 아내에게 친구 타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거짓말을 했고 물론 타미의 부모가 잠들면 타미가 이곳 까지 태워다 주고 또 다시 데리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에이미는 그럴듯하게 둘러대는데 소질이 있는 얘라서 이번에도 일이 잘 되었다.
나는 발코니로 나와 난간에 팔을 기대고 친숙한 샌프란시스코의 만위로 드리워진 지평선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오클랜드의 잭 런던 스퀘어의 하이야트 호텔 12층에서의 정경은 정말 특별한 맛이 있었다. 6월의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을 지켜 보면서 나는 20년 전 버클리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3년전 그날, 10월의 일요일 오후 무슨 일이 시작되고 벌어졌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사라져가는 토종 캘리포니아 사람이다. 1957년 캘리포니아 남부의 추알라 비스타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우리 가족은 내가 여섯 살 때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만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대학 영문학 교수인 아버지와 함께 이곳 버클리에서 자랐다. 그리고 능력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UC 버클리를 다닐 수 있었고 부모님은 내가 집에 살면서 학위를 따기를 바라셨다.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붐이 일어나던 1977년 5월 나는 컴퓨터 분야의 학위를 땄고 친구인 래리 얼트와 함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아파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마침 때를 잘 만나서 단 6개월만에 텔레그래프 로드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 5명의 직원으로 제대로 된 사업을 펼칠 수 있었고 18개월 후에는 12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또 나는 지금의 아내인 제인 심슨과, 래리는 다이앤과 각각 결혼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서 제인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영어를 전공한 그녀와 나는 서로 공통의 친구가 있었고 또 아버지가 영문학부의 주임 교수였기 때문에 가끔씩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과 파티가 있을 때마다 거의 모습을 드러냈고 나 또한 그곳에서 귀여운 여자 얘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참석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전공한 얘들을 못생기고 이상한 부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 학기의 파티에서 만나서 적당히 친해지게 되었다. 제인은 다소 컴퓨터를 쓸 줄 알았고 또 재미있는 아이였다.
우리 회사는 유능한 사무실 관리자가 필요할 만큼 커졌고 마침 제인이 지원해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제인이 일하게 되어 기뻤는데, 우선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고 또 많은 행정적인 일거리들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래리에게도 좋은 일이어서 우리는 장부정리나 일에 필요한 경비 관리, 또 세금 계산 같은 일들에서 벗어나 좀더 창의적이 될 수 있었고 또 동시에 작은 사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인은 숫자나 세금 양식등에 뛰어나고 우리가 고용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완벽한 직원이었다. 문제는 일 년 쯤 지나자 그녀가 이 일에 싫증을 내게 되어 우리의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문을 배우러 로스쿨에 다니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로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일 년 반 후 제인은 졸업을 했고 우리가 몇 가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시점에 다시 합류를 했다. 회사는 이미 50 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20명은 우리 상품에 대한 생산과 물류 지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1981년 중반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샌디에고로 생산과 물류 분야를 옮겼다. 그리고 그해 5월 25일 우리의 딸 에이미가 태어났다.
제인은 산고를 많이 치루어서 에이미가 태어난 후 의사는 또 다른 아이를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제인은 내가 정관절제 수술을 하기를 강하게 고집했고 나 또한 그에 반발해서 몇 주 동안 크게 싸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인이 로스쿨을 마친 이래로 엉덩이에 통증이 있었는데 혹시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나는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결국 제인은 마지못해 피임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그것을 강요했다고 생각하여 다소나마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썩 이유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했고 어쨌든 임신이 위험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결국 그녀가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나에게 요구하지 않은 것은 매우 합리적이었다고 느껴졌다.
난관 봉합술이나 정관 절제술이냐 하는 논쟁은 실제로 우리 결혼에 긴장감을 가져왔다. 심지어는 우리가 일을 할 때 공적인 사이가 되는 것 마저 힘들 지경이었다. 래리는 결국 제인을 사무실에 두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고 1983년 6월 제인은 다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로펌(law-firm)중의 하나에 합류했다. 새로운 일을 가지게 된 제인은 좀 잠잠해졌고 우리의 사업도 잘 되어 제인과 나는 버클리 힐에 있는 큰 집으로 이사했다.
1988년 크리스마스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부모님의 죽음은 나에게 큰 손실이었고 슬픔속에 여섯 살 된 딸 에이미에게 (제인보다는) 더 감정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미는 무척 유쾌한 작은 아이로 아름답고 발랄했다. 딸아이의 머리칼은 크레용 상자에서 밤색(burnt umber)이라고 불리우는 색깔로 변해갔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인 줄리(래리의 딸로 에이미보다 며칠 늦게 태어났다)가 burnt umber의 발음이 안 되어 bummer로 말했고 에이미는 머리색깔이 빨간빛을 띤다고 여겼다.그녀는 새로운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일했고 반대로 나의 일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많은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를 고용했고 나는 단지 회사의 계획을 세우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주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인터넷과 전화로 대신 일을 처리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내가 에이미를 돌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에이미와 제인은 점점 더 멀어졌다. 에이미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그 얘 얼굴을 보는 시간이 줄어 들자 나는 더더욱 딸아이가 그리워졌고 그 얘가 없는 내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닫게 되었다.
회사가 커짐에 따라 나는 펜실베니아의 MBA과정을 등록했다.
다음 2년간 우리 집안은 무척 바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동안 체증에 시달려서 30마일 떨어진 파로알토로 갔고 제인은 에이미가 학교에 갈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대신 에이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내가 집에 있어야 했고 아내는 늦은 일과를 보충하러 7시 8시 까지 근무를 했다. 에이미와 나는 둘이서 저녁을 먹고 비디오를 보고 또 제인이 올 때 까지 책을 읽어준 후 에이미가 잠자리에 들고서야 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딸아이를 돌보는 것이 전혀 싫지 않았는데 그만큼 에이미가 사랑스럽고 밝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에서 배우들이 말하기 전에 그대로 흉내내 보다가 서로 웃곤했다. 아내는 바보같다고 하며 그것을 싫어했는데 결국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지 않았다. 1991년 MBA과정을 끝내고 집안일은 당분간 정돈이 되었다. 사업도 잘되어 어느날 래리는 은퇴하여 회사의 지분에서 생기는 지분반으로 산타바바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에이미는 줄리가 떠나자 무척 그리워해서 여름방학초 3주는 에이미가 산타바바라로 가고 또 개학하기전 3주는 줄리가 우리를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두 아이는 몸이나 성격이 몹시 다른데도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려서 함께 있을 때는 친자매같았다.
줄리가 이사한 후 에이미는 전보다 더 나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딸애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좀 괴이한 재능을 개발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서로의 말을 완성시키는 것 따위였는데 그것은 무척 아내를 화나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는 아내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1994년 가을 일은 시작되고 있었다.
에이미는 열세살 오개월의 나이였고 내 눈에 보기에 이제 막 아름다운 여자로 접어들려는 초입에 들어있었다.
내가 서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풋볼을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에이미가 전속력으로 방안에 뛰어들었다.
"아빠 내 머리좀 보세요. 침대에 있는 선반에 책을 올려놓고 있는데 선반 끄트머리가 벗겨져서 머리위로 떨어졌어요. 너무 아파요. 아빠가 피나는지 한 번 봐주세요"
에이미는 늘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늘 방청소해라 얌전해라 하는 아내와 달리 난 곧잘 딸아이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래서 에이미는 내가 엄마보다 주위를 끌거나 용돈을 더 타내기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미는 내 무릎위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자신의 머리위를 보게했다. 그애는 무릎까지 오는 티셔츠에 신발없이 양말만 신고 있었는데 내 앞쪽으로 머리를 기대자 늘어진 셔츠가 벌어져서 나는 지금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예쁜 작은 젖가슴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아내가 나나 에이미가 벗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딸애의 벗은 모습을 세 살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에이미의 가슴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작은 오렌지 사이즈에 가벼운 핑크빛 방울모양의 젖꼭지, 희미하게 흔적을 보이는 엷은 파란색 정맥들. 딸애의 젖꼭지는 유방의 꼭대기에서 나를 향해 솟구쳐 있었다. 에이미가 머리의 상처난 부분을 보이기 위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자 두 개의 작은 가슴이 부풀어 올라서 그 사이가 벌어졌고 젖꼭지는 더욱 선명하게 솟아 올랐다.
"봐요. 아빠. 여기에요. 혹이 난 것 같은데 피도 나요?"
나는 딸애의 머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애의 어린 가슴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즉시 대답하지 않자 딸애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자신의 셔츠속을 훔쳐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얼른 눈을 때었으나 에이미는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렸다.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을 때 나는 그애의 젖가슴이 단단해졌다고 맹세할 수 있다! 에이미는 재빨리 뒤로 당겨 앉아서 이번에는 머리를 앞으로 수그렸다.
"이봐요. 아빠. 정말 아파요"
내가 그애의 머리를 쳐다 보았을 때 나는 내 남성이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정신좀 차려라, 지금 에이미 앞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에이미는 벌써 열세살이고 작년에 초경을 했으니 가슴이 나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에이미의 머리를 살펴 보았지만 작은 혹이 있을 뿐이고 어디에도 피가 난 자국은 없었다.
"애야 괜찮다. 내가 뽀뽀 한 번 해 주면 금방 나을거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아이의 머리 위에 살짝 뽀뽀를 해 주었다.
"자 이제 축구 좀 보도록 해 다오. 너는 가서 옷 갈아입고 저녁 먹을 준비해야지."
"아이 참. 아빠는 늘 날 어린애 취급한다니까. 아빠는 딸래미 보살피는 것보다 축구보는게 더 좋은거죠?"
에이미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미가 내 무릎에서 내려올 때 그 짧은 시간에 잠깐이나마 그 애의 팬티가 보였다. 에이미는 앞에 레이스가 있는 하얀 면팬티를 입고 있었는데 분명 음순의 아웃라인과 작고 까만 털의 흔적이 팬티에 비쳐 보였다. 그애는 내 무릎에서 내려오자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나를 쳐다 보았는데 마치 내가 자신의 가랭이 사이를 봤는지 안 봤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에이미가 방 밖으로 나갈 때는 나의 착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들어올 때 보다 더 엉덩이를 흔드는 것 같았다. 반쯤 단단해진 자지는 수그러들었지만 갑자기 딸애의 엉덩이가 몸의 다른 부위와 균형잡히게 잘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미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눈빛으로-다 큰 여자의 호기심어린-나를 쳐다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조깅을 하면서 에이미에 대한 나의 새로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분명 딸애에게 성욕을 느끼고 있었고 저녁 내내 딸애의 몸에서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딸애는 내 눈 앞에서만 움직이려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다행히도 아내는 로펌에서 파트너가 되기 위해 열을 쓰고 있었으므로 이런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에이밍에게 집안에서 뛰어다니지 말고 앉아서 TV를 보거나 가서 자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에이미는 아내가 잠깐 부엌으로 간 사이에 나에게 와서 굳나잇 키스를 했다. 그애는 잠잘 때 입는 셔츠로 다시 갈아입고 있었고 몸을 수그릴 때 낮과 같이 가슴이 다 들여다 보였는데 젖꼭지가 지금은 훨씬 더 진한 핑크빛으로 변했고 단단해 보였다. 마치 끝이 주름지고 도드라진 연필 끝에 달린 작은 지우개 같았다. 딸애는 나에게 살짝 기대서 늘 하던대로 볼에다 하지 않고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조금 뒤로 물러섰는데 그애는 잠깐동안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엄마 잘 자 하고는 계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나는 조깅을 하면서 어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느낌을 갖는 걸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딸아이가 자람에 따라 이런 감정을 가지는 걸까? 이것이 소유욕이라면 내가 딸아이를 여자로서 소유하고 싶어하는 걸까? 나는 늘 에이미에 대해 보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 아이를 성적으로 느끼게 되자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와 딸애는 지금껏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았는데 섹스라고 해서 다를까? 만약 그애가 날 유혹하려 했다는 내 짐작이 맞는다면 아니면 적어도 나를 그런 연습을 하기 위한 안전한 상대로 여긴다면 분명 나에게는 즐거우면서도 편하지 않은 여행같은 느낌이 들 것 이었다. 에이미는 분명 자기가 갖고 있는 성적매력의 힘을 인식하게 될 것 이고 그 여행이 진행이 되어 갈수록 더 모험적으로 나올 것이다. 나는 어제 오후 이후로 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딸애의 벗은 몸을 더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그애의 꽁무니를 쫒아다니거나 아니면 딸애가 내 방에 들어올 때 마다 두근거리며 훔쳐보면서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딸애가 모르는 방식으로 그애의 작고 섹시한 몸뚱아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기로 했다.
2마일 정도 달리고 나서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서두르지 않고, 또 안전한 방법으로, 에이미에게 눈치채이지 않는 선에서 그애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리 집의 화장실이나 침실문은 늘 닫혀있고 또 화장실 문은 늘 잠겨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집의 누구도 노크를 하지 않고는 침실문을 함부로 열지 않도록 되어있었고 또 우연을 가장하여 딸애의 방에 뛰어든들 내 속셈만 탄로날 뿐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딸애 방 창문도 생각해 보았지만 늘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또 2층이라 실효성이 적었다.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나와 제인이 집에서 사무를 보기 위해 이용하는 방이 있었는데 마침 그 방이 화장실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늘 조깅을 마치고 에이미를 깨운 후 에이미가 샤워하는 동안 그 방에서 조간 신문을 보곤 했다. 그리고 큰 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커피나 토스트를 만들어 막 일어난 제인이 샤워를 마치기를 기다리곤 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해 볼 때 결국 해결책은 에이미가 샤워를 하는 화장실에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바로 위층 에이미가 쓰는 화장실로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잠시 살펴보는 동안 에이미가 어제 입었던 레이스 달린 하얀 팬티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딸아이의 보지가 맞닿는 부분을 보았다. 곧 희미한 얼룩이 눈에 띄었고 나는 그 부분을 코로 가져가 에이미의 달콤한 처녀의 내음을 들이마셨다. 나는 이전에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었고 조금 변태짓 같았지만 곧바로 내 물건은 단단해졌다. 나는 등뒤의 문을 닫고 반바지를 내린 후 자지를 꺼내 놓았다. 딸아이의 팬티에 얼굴을 묻고 또 얼룩이 진 부분을 혀로 핱으면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근사한 자위를 했다. 많은 양의 정액이 세면대로 튀어 올랐고 이런 딸아이에 대한 망상은 밤는게 까지 계속되어 마음속을 애태울 뿐이었다.
사정이 끝난 후 제 정신을 찾자 화장실 벽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바라는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외풍이 있는 편이어서 아침에 샤워할 때 무척 춥기 때문에 에이미는 지난 겨울 큰 방 화장실처럼 벽에 달린 히터를 달아달라고 보채곤 했었다. 그 히터를 지금 달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다. 나는 정액을 깨끗이 닦아낸 후 화장실을 나왔다. 나는 2층을 가로질러 바로 에이미의 방으로 가서 가볍게 노크를 해서 아이를 깨웠다.
"들어와요 아빠"
딸아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열고 안을 들어다 보았다. 에이미는 빨간 빛이 나는 밤색 머리칼을 베개위에 풀어놓은 채 똑바로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리고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나는 바로 딸아이의 몸위로 뛰어올라 미친 듯이 온몸을 탐하고 싶었다. 단지 그 본능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 애가 내 딸 에이미라는 것 뿐.
"아빠. 잠깐 이리 와서 얘기좀 해요"
나는 바지에 정액자국이 묻어 있었고 또 내 물건이 아직 반쯤 단단해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가기 싫었다.
"애야. 지금 조깅을 하고 와서 땀이 범벅이란다. 자 얼른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먹어야지."
나는 그냥 문가에 기대어 말했다.
"알았어요 아빠"
에이미는 침대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그때 얼핏 딸애의 보지를 볼 수 있었다. 분명 아까 화장실에서 본 팬티를 벗고는 다시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문가에 서 있었고 딸애가 다가와 나를 붙드는 순간 우연히 젖가슴이 내 팡에 와 닿았다.
"빨리요 아빠. 샤워를 하고 나온 여자에게 아침식사를 마냥 기다리게 할 거에요?."
에이미는 눈썹을 내리깔며 지긋이 나를 올려다 보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애가 그렇게 허스키하고 섹시한 톤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분명 같이 본 올드 무비의 대사를 흉내낸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내 남성을 다시 곤두서게 했다. 난 곧 뭔 일을 벌이거나 아니면 남은 일년 내내 이렇게 발기한 채로 지내야 될 것 같았다. 내가 화장실에 히터를 달거라고 말하자 에이미는 나에게 달려들어서 두 팔로 꼭 껴안고는 입술에 쭉하고 키스를 해댔다.
"아빠는 이 세상에서 최고에요. 난 아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에요"
에이미는 내 목 근처에서 나직이 소근거렸다. 그애의 음부는 이제 내 넓적다리를 누르고 가벼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잠시후 에이미는 나를 밀치고 휙 돌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히터를 설치해 주는 데에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음을 인정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그것을 합리화시켰는데 즉 이런 일로 딸아이의 정신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내 소망을 이룰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지난 18시간 동안 나는 딸아이에 대한 망상에 미친 듯이 빠져있었다.
그 날 나는 히터를 사서 딸아이와 아내가 저녁에 쇼핑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 히터의 뒷부분에 직경 1인치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내가 사무를 보는 방 벽에는 전기 스위치가 달려있는 스위치판이 있었는데 나는 전선을 제거하고 스위치 박으의 뒷면에 구멍을 뚫어 이미 히터에 뚫은 구멍과 일직선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에이미의 화장실로 가서 구멍이 그쪽에서 눈에 띄는지 살펴보았다. 내 사무실에서 불을 켜놓지 않는 한 눈에 띌 염려는 없어 보였다. 사무실에서 보는 전경은 꽤 괜찮았는데 바로 화장실 벽의 거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거울을 통해 화장실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여다 보였다.
다음날 조깅을 하면서 내가 벌이는 일에 대한 도덕적 자책과 함께 혹시나 에이미나 제인에게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에이미와 내가 간직해온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한 번에, 영원히 무너져내릴까? 딸애의 나체를 훔쳐보는 아버지를 그애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처음 1마일째를 달리면서 모든 도덕적 문제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고 내가 벗은 몸을 좀 본다고 해서 설마 딸아이에게 무슨 잘못이야 생기겠냐는 식으로 생각했다. 나는 많은 가족들에게 이런 식의 격의 없이 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했고 오히려 아내가 이런 자연스러운 일들을 불합리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합리화시켜 나갈수록 나와 딸아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아내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아내는 침대에서 전혀 능동적이지 못했고 먼저 섹스를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내가 조금 색다른 행위를 요구하면 마지못해 받아들이곤 했다. 내가 정관수술을 거부한 이래로 이런 일은 더 심해졌으며 제인이 파트너가 되기위해 매달려온 지난 한 해 동안은 아예 관계조차 가지지 않았다. 나는 에이미의 눈에서 아내보다 훨씬 더 완전한 포용력과 사랑을 보았다. 만약에 곧바로 에이미의 방으로 들어가 나를 위해 옷을 벗어달라고 하더라도 그애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그것은 내가 내 감정을 추스릴 때까지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적당한 방법이 아니었다.
물론 열세살 짜리 딸애의 알몸을 훔쳐보다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만일 히터 뒤의 구멍을 에이미가 알아차리고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나쁜 것은 제인이 발견할 경우다 .난 분명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딸을 잃고 말 것이다. 게다가 지금껏 내 자신을 남의 사생활이나 엿보는 놈으로 여긴 적이 없었고 또 그것이 이처럼 자극적으로 생각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현 상태로는 에이미의 알몸을 본다는 것에 모든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쨋든 그 날 아침 나는 조깅을 하면서도 마음 속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번 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난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난 곧바로 사무실로 가서 스위치 판을 뜯어내고는 다시 에이미의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켜고 히터의 뒤로 구멍이 보이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결과론적으로 구멍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보더라도 그 흔적조차 쉽게 찾기는 힘들었다. 이번에는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불을 끄고 보자 아까보다는 훨씬 눈에 잘 띄었다. 결국 화장실에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실의 스위치판을 뜯어낸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운이 좋다면 지금은 밤이 긴 계절이어서 에이미는 일찍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불을 키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스위치판을 원래대로 해 놓고는 에이미를 깨우러 갔다. 나는 점잖게 노크를 하고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했다.
"알았어요. 아빠. 금방 일어날께요"
에이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향하는 판자를 떼어내었다. 화장실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여전히 잘 보였다. 하지만 만일 에이미가 화장실에 불을 켜지 않고 들어온다면 얼른 판자를 덮어야 했다. 벽에 얼굴을 붙이고 눈을 조그만 구멍에 들이댄 체 서 있는 내 가슴은 쇠로된 해머소리같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고 입안은 바짝 말랐다. 드디어 에이미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난 갑자기 용기를 잃고 벽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구멍에다 눈을 갖다댔다. 곧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또 화장실 안이 갑자기 환해졌다. 에이미가 내 시야에 들어와서 세면대 앞에 서더니 앞으로 기대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긴 축구셔츠에 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다(에이미는 발이 차다고 늘 불평한다) 에이미가 앞으로 기대어 있자 셔츠가 위로 밀려올라가서 핑크빛의 귀여운 엉덩이 끝부분을 살짝 드러내었다.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내 자지는 부풀어 올랐다. 딸아이 몰래 이렇게 은밀한 부분을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의 물결이 밀려왔다. 나는 비로소 사람들이 몰래 카메라 같은 것에 왜 관심을 갖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벌거벗은 몸을 본다든가 하는 차원을 떠나서 피관찰자 몰래 그들이 대중앞에 내 놓는 가식적인 얼굴 밑의 매우 사적인 부분까지도 보고 또 그들 자신도 모르는 것까지 속속들이 알아내는 이런 행동이 마치 신이나 된 것 처럼 느끼에 하는 것이다.
에이미는 다시 일어나서 변기 쪽으로 가더니 돌아서서 셔츠를 올리고는 변기위해 앉았다. 그러면서 가랭이 사이의 털이 얼핏 보였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애는 몸을 조금 앞으로 수그렸고 곧 오줌누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일을 다 본 듯 화장지를 조금 뜯어내더니 가랭이 사이를 닦아냈다. 이번에는 그곳의 털을 좀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에이미는 필요이상으로 오랫동안 닦는 것 같았다. 화장실 물을 내린 에이미가 입고 있던 셔츠의 밑부분을 잡더니 머리위로 끌어당겼다. 난 거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맙소사, 딸아이는 몸에 걸친 거라고는 이제 양말 한 짝 뿐이었다! 그애는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히터쪽으로 걸어왔다. 그때 얼마나 좁은 구멍에 두 눈을 들이밀고 있었던지 누가 나를 향해 총을 쏘아도 그 자세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이 어린 소녀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는 헝클어져서 얼굴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 어깨까지 내려오기도 하였다. 노브라 노팬티로 잠을 자서일까 가슴과 엉덩이에는 자국없이 부드러운 아이보리색의 피부만 있었다. 작은 유방은 탱탱하며 사랑스러웠고 차가운 공기를 맞아서 젖꼭지는 단단해져 있었다. 허리는 잘록했고 엉덩이는 이제 막 여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다리는 놀라리만치 무척 길어서 몸의 삼분지 이는 될 것 같았다. 단지 길 뿐만 아니라 속이 여문 듯 충만해 보였고 단단하면서도 무척 부드럽게 보였다. 내 시선은 곧 에이미의 허벅지로 내려갔다. 그곳에 딸아이의 아름다운 꽃잎이 있었다. 조금 돋출된 언덕에 빨간 빛 나는 밤색의 수풀이 우거져서 섬세한 균열을 감싸고 있었다. 그애의 허벅지는 그처럼 작은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조그마한 비밀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내 손은 본능적으로 바지속으로 들어가서 무릎아래로 끌어내리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단단해진 자지를 꺼내놓았다. 나는 에이미의 아름다운 몸을 바라보며 자지를 움켜쥐고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그애가 히터를 켜기 위해 이쪽으로 오자 이제 한발짝 정도나 될까 하는 거리에서 클로즈업된 유방을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입을 내밀어 이처럼 아름답고 작은 젖가슴을 빨고 싶었다. 히터가 돌아가서 따뜻한 공기를 가슴위로 쏘아내자 딸애는 낄낄대면서 왼쪽 젖꼭지를 잡고는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살짝 비틀었다. 부드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저편으로 가서 양말을 벗어던지고는 샤워기 아래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폴짝 폴짝 뛰는 통에 젖가슴은 흔들렸고 또 근사한 엉덩이도 볼 수 있었다. 에이미는 흔히 말하는 bubble-ass 즉 작고 단단하며 암초처럼 튀어나온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저 엉덩이를 타고 뒤에서 범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애가 샤워기 물줄기를 조절하러 몸을 앞으로 숙이자 가랭이 사이가 그대로 들어다 보였다. 이렇게 다리를 벌리고 서있자 꽃잎은 살짝 벌어져서 그 속의 구멍까지 들여다 보였다. 이때 나는 벽을 향해 많은 양의 정액을 뿜어댔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제법 커서 걱정이 되었으나 물줄기가 계속 흐르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사정을 향하면서 "널 갖고 싶단다 에이미야. 이건 너를 위한 거다" 라고 중얼 거렸다. 딸아이는 이제 욕조 속으로 들어가샤워실 커텐을 쳤다. 난 자지를 손에 쥔 채로, 몹시 지쳐서 의자위로 무겊게 주저앉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 딸아이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이제 남은 일은 에이미를 범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문제는 왜 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을 벌여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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