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특별한 사랑방식 - 3부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연주는 줄곧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연주와의 키스. 전혀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져 버렸다. 연주와 나는 연인사이가 된 것일까. 나는 그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고, 연주가 산다는 원룸 앞에 도착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였다.

“잠깐 들어오실래요?”
연주가 말했다.

“음....그래두 돼?”
“그럼요. 들어오세요.”

연주가 사는 원룸에 들어갔을 때 그 방이 연주의 방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연주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방이어서였을 것이다.
연주와 나는 커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뭔가 이상했다. 키스를 한 이후에 오히려 더 어색해진 느낌이었다.

“선생님”
연주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응?”
“죄송해요.”
“뭐가?”
“키...스해서요...제 기분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좋았던 것 같아.”
“이제 우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연주가 갑작스럽게 이 말을 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왜?”
“전 선생님하고는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어요. 선생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세상...”

연주의 눈가에 물기가 번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연주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일을 그만 두고 학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해 캐묻지 않았었다.

“그 다른 세상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생각은 없니?”
“그럴 수 없어요. 이유 묻지 말아 주세요.”

결국 연주의 뺨에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제 저한테 오지 말아 주세요.”

나는 연주의 그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캐묻거나 설득하려고 하면 연주는 마치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저 가슴 속만 답답해져 올 뿐이었다.

나는 그때 섣불리 연주의 사적인 영역에 끼어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연주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주의 삶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간섭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고 정리해버리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합리적인 판단과 솔직한 감성이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야? 하하하. 어쩐지 니가 룸빵에 괜히 혼자 갈 놈이 아니지. 리수, 아니 연주가 너 제자였던 거구나....”

며칠 후 박 선배와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내가 연주에 관한 얘기를 했을 때였다.

“그걸 모르겠냐? 이 쑥맥아. 화류계로 빠지는 애들 중 90프로 이상이 다 빚 때문이야.”
“빚이요? 연주가 빚을 지고 그런 일을 한다구요?”
“뭔가 사연이 있겠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마담윤아 만나서 물어봐라. 내가 연결시켜 줄게.”
“아..아뇨. 됐어요. 연주의 뒤를 캐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날 새벽 나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박 선배였다.

“예? 뭐라구요? 아..네.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아뇨. 박 선배는 올 필요 없어요.”

박 선배는 미미로부터 전화를 받고 다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황급히 차를 몰고 ‘써니 힐’로 향했다.
내가 써니 힐에 도착했을 때 미미는 정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요 며칠 애가 이상하더니 저러고 있네요.”
미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미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호스트바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날렵한 꽃미남이 우리를 반겼다.

“미미누나. 오랜만이야.”
“리수 어딨어?”
“4번 방인데 왜?”
“비켜.”

나는 미미를 따라 연주가 있다는 방으로 갔다.
문을 열었을 때 상석에는 엉망으로 취한 연주가 한 젊은 남자의 품에 안겨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연주는 내가 온 것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나는 연주에게 다가갔다.

“당신 뭐야?”
그 남자애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리 비켜.”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그때 내 눈에서는 불이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남자애가 조금이라도 더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면 당장 주먹이 날아갈 기세였다.
그 남자애는 내 기세에 위압되기라도 한 듯 눈치를 슬슬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연주를 들쳐 업는 동안 그 남자애와 미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뭐야...”
그 남자애가 미미 앞을 지나가면서 투덜거렸다.

“꺼져 새꺄!”
미미가 일침을 놓았다.

나는 연주를 업은 채로 계산을 했다.

“이 아가씨 여기 자주 오나?”
“생전 안 오다가 요즘 며칠간 계속 왔어요.”
계산을 도와주던 꽃미남 녀석도 내 눈치를 슬슬 보면서 말했다.

연주를 내 차의 뒷좌석에 태웠다.
연주는 차에 오르자마자 힘없이 푹 쓰러져 버렸다.

“고마워, 미미.”
“아이, 뭘요. 진우오빠. 실장님이 리수 오늘은 쉬래요.”
“그리구...음...저기....리수가 아니고 연주야...”
“연주요? 리수 본명이에요?”
“응. 앞으로 연주라고 불러줄래?”
“하하. 그럴 게요. 잘 가요, 진우오빠”

연주의 원룸으로 가는 길에 연주는 쓰러진 채로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연주를 침대에 눕혔다. 엉망으로 술에 취했다지만 그 깨끗하기만 한 연주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가슴 속이 또 다시 먹먹해져 왔다. 나는 근처 수퍼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와서 북어국을 끓였다. 그리고 작은 메모를 남겼다.

‘출근해야 해서 그냥 갈 수밖에 없었어. 저녁 때 다시 올게. 북어국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아, 그리고 실장이 연주 오늘 쉬라고 그랬데..푹 쉬고 있어.’

그날 강의는 엉망이었다. 내 강의에 힘이 빠지면 학생들은 금방 눈치를 챈다.

“아...오늘 강의 정말 형편없었죠? 너무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초짜라 그런지 프로의식이 부족하네요.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사과를 하자 학생들은 ‘아니에요.’ ‘좋았어요.’ 라고 화답을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연주의 원룸으로 향했다.
연주의 원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열리자마자 연주는 나에게 안겨왔다.
우리의 두 번째 키스였다. 그리고 그 두 번째 키스는 첫 번째 것보다 훨씬 더 뜨겁고 격렬했던 것 같다. 첫 번째 키스가 연한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는 뜨거운 위스키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연주와 나의 혀는 그렇게 뜨겁게 엉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뜨거운 행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함께 침대에 누웠다. 연주는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있었다.
연주의 불룩한 가슴의 부피감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왔다.

“북어국...”
“응, 어땠어?”
“솔직히 말하면 맛이 없었어요. 하하.”
“아....미안해. 처음 해 보는 거라서...”
“하지만 저 그거 다 먹은 거 있죠.”
“왜?”
“너무 맛있어서요. 하하.”
“맛없었다면서?”
“네, 맛없었는데 맛있어서 다 먹었어요. 하하하,”
“무슨 말이 그래?”
“저도 몰라요. 하하...”

일요일에는 우리 모두 쉬는 날이었다.
연주, 미미, 박 선배, 그리고 나.
나는 세 사람을 내가 사는 아파트에 초대했다.
맛있는 꽃등심을 마트에서 사고 위스키가 아닌 소주를 샀다.
불판에 고기가 지글거리고 익고 있었다.

“진우오빠, 그 때 호빠에서 죽여줬어요. 호호호..”
미미가 그날 있었던 일을 입에 올렸다.

“저리 비켜 이러는데 호스트새끼들 완전 쫄아가지고...호호호...”
미미는 내가 호스트바에서 했던 ‘저리 비켜’라는 말을 저음으로 깔아서 흉내를 냈다.

“완전 원빈이었다니깐....호호호”

연주는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내 입에 고기를 집어주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리수, 아니 연주. 진우오빠가 그렇게 좋냐?”
박 선배가 말했다.

“아....네...좋아요. 하하...”
연주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후와. 써니 힐 에이스 연주도 사랑에 빠지는구나...호호”

은은하게 틀어놓은 보사노바 음악 속에서 취흥이 무르익어 갔다.
취기가 돌고 감성이 살아나자 박 선배와 미미는 또 다시 우리 앞에서 거침없이 스킨십을 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또 얼굴을 붉히고는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저..박 선배, 우리 좀 안 보는 데서 해요. 애도 있는데...”
“저..애는 아닌데...”
“그래? 미미야, 그럼 우리 들어가서 하자.”
“네, 그래요. 오빠.”
“들어가서 하긴 뭘 해요? 아, 진짜....”

박 선배는 미미의 손을 잡아끌고 기어이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미미의 신음소리가 침실로부터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머!”
“하하...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그때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연주, 불확실하기만 했던 연주에 대한 나의 감정이 거의 모양을 갖추고 확신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연주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는 늘 불안하기만 했다.
연주와 나의 행복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연주는 여전히 소녀 같이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았다. 미미 말 대로 써니 힐 에이스답게 극강의 섹시미를 갖추고 있었다. 큰 키에 풍만한 가슴, 그리고 쭉 뻗어 내린 긴 다리....
그야말로 연주는 써니 힐의 최고 상품이었고, 그것은 곧 많은 남자들이 연주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안감은 결국 연주의 환상적인 외모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던 것 같다.
가슴 속이 답답해 왔다. 공부나 할 나이에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연주가 안쓰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본질적인 불안감에 대해서 연주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연주가 그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오?”
연주가 내 팔을 품듯이 붙잡고 말했다.

“아..아니, 그냥....별 생각 안 했어. 커피 마실까?”
“얍!”

연주와 나는 미미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연주와 나는 다른 커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쉬는 날이면 만나서 함께 거리를 걷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그리고 키스를 했다. 모든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 같았다.
함께 길을 걸어갈 때 연주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는 남자들의 시선도 이제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강 둔치에 차를 대고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분위기에 취해 키스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연주의 가슴골이 그렇게 육감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연주와의 키스에 몰입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주의 가슴에 손을 대게 되었다.
처음으로 연주의 가슴을 만진 것이다. 그런데....

“아앗....자..잠깐만요....”

연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하던 동작을 일시에 중단해버렸다.

“어...미..미안..나도 모르게 그만....”
“아..아뇨, 그게 아니구....죄송해요.”

분위기는 갑자기 어색해져 버렸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알았어.”

연주의 원룸으로 가는 도중에 연주와 나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안녕히 가세요. 저 들어가 볼게요.”

연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들어가 버렸다.
연주의 말투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연주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나는 연주하고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자제하기로 하고, 그 대신 미미를 만나기로 했다. 틀림없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고, 그것은 써니 힐과 관련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저는 이해가 가요.”
“설명 좀 해줄래?”
“써니 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겪는 직업병 같은 거예요.”
“직업병?”
“남자들 손길을 병적으로 싫어하게 되는..그런 거죠.”
“하지만 연주가 나하고 키스는 잘 하는데...”
“그거야 사랑하니까 얼마든지 가능해요. 하지만 손길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예요.”

써니 힐의 손님들은 늘 연주의 몸을 만지고 더듬고 싶어 할 것이다.
연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대가 누가 됐건 연주의 몸은 그들의 손길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아직 여리기만 한 연주가 그런 것을 감당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 미미.”
“아이, 뭘요.”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연주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철저하게 자제하기로 했다.

“왜 그렇게 떨어져 앉아요?”
연주의 원룸에 갔을 때였다.

“응? 음..날씨가 덥잖아...”
“뭐가 더워요? 하하하...저기 선생님.”
“응?”
“고마워요.”
“뭐가?”
“미미언니한테 얘기 들었어요.”
“헐.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리 오세요. 저 괜찮아요..”

나는 연주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연주는 부드럽게 내 목을 끌어안았다.
연주의 향기가 나를 취하게 한다.
연주와 나는 오랜만에 다시 키스를 하게 되었다.
내 온 몸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전부 각성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키스를 하다가 연주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슴 만져주세요.”
“싫어.”
“저 괜찮아요. 만져주세요.”
“싫다니까...”

연주는 내가 이렇게 완강히 거부를 하자 스스로 내 손을 잡아서 자신의 가슴에 얹어주었다.
내 손에 연주 가슴의 부드러운 감촉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더니, 그 느낌은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아..정말 아름다운 가슴이었다.

“괜찮아?”

연주는 대답 대신 다시 내 입술을 찾았다.
나는 처음으로 연주의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연주의 입속에 내 혀를 집어넣었다.
뜨거웠다. 지금까지 연주와 했던 키스 중에 가장 뜨거웠던 것 같다.
단정한 연주도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자지도 미친 듯이 발기가 되어 벌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했다가는 또 다시 연주를 당황하게 만들 것 같았다.
나는 하던 동작을 중단하고 연주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 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후우...너무 뜨겁다.”
“네. 완전 뜨거워요. 이렇게까지 뜨거울 줄 몰랐어요.”

그렇다. 나는 작은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기로 했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연주의 옷차림은 가벼워졌다.
핫팬츠와 민소매티를 입은 연주를 볼 때면 아찔하기까지 했다.
불룩한 가슴과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부각되고 있었고, 탄탄한 허벅지는 보고 있기만 해도 자지가 발기될 정도였다.

“뭘 그렇게 봐요?”
연주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휴우...아니다.”
나는 체념하듯이 말했다.

“저 이렇게 입고 있는 거 싫으세요?”
“싫다기보다는 보고 있기가 괴롭지. 하하하...”
“왜 괴로워요? 하하하..”
“아...몰라..묻지 마.....”

그날 이후 연주는 핫팬츠와 민소매티를 입지 않았다.
그 대신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대단히 단정한 복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연주의 섹시미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은근하고 은은한 매력이 발산되고 있었다.
연주는 내 앞에서 치마를 두 손으로 살짝 잡고 한 바퀴 돌고 나서 말했다.

“훨씬 낫죠?”
“으..응....하하”


오랜만에 박 선배와 함께 ‘써니 힐’을 찾았다.

“오모, 진우씨 너무 오랜만이다. 가끔 들러주세요.”
마담 윤아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우 쟤, 요즘 기집 치마폭에 쌓여서 정신을 못 차려.”
박 선배가 말했다.

“호호호, 알고 있습니다. 리수하고 그런 관계라는 거...”
눈치 백단인 마담 윤아가 그걸 모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외람되지만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네..무슨 말이든지 해 주십시오.”
“아시겠지만 리수가 사는 세계하고 진우씨가 사는 세계하고는 달라요.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르죠. 그걸 잊지 마셔야 할 거예요.”

다른 세계. 언젠가 연주도 언급했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 연주와 나와의 관계 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요소가 또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다른 것일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세팅이나 해. 미미하고 리수, 빨리 불러오고...다르긴 개뿔이 달라?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지.....”
박 선배가 마담 윤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박 선배는 늘 그렇게 명쾌하게 정리를 해버린다.

“아, 진짜. 진우씨 앞에서 가오 좀 살려주면 어디가 덧나요? 아놔, 빈정상해서 정말...”

마담 윤아가 박 선배에게 눈을 흘기면서 룸에서 나갔다.

연주는 나를 보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여길 왜 와요?”
“아, 내가 데리고 왔어. 가끔 오는 건데 뭐 어떠냐?”
박 선배가 말했다.

“여기서 만나면 꼭 아가씨하고 손님 같잖아요?”
“그냥 보고 싶어서 온 거 뿐이야.”
“오빠, 나 지명 생겼다. 호호호...”
미미가 박 선배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오우, 정말? 축하한다.”
박 선배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참 알다가도 모를 관계라고 생각했다.
지명이라는 것이 미미를 지명한 단골손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근데..나이가 50대야...공사나 칠까?”
공사를 친다는 것은 손님으로부터 비교적 큰 액수의 돈을 뜯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어우, 언니.”
연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사를 쳐도 적당히 쳐라. 너무 크게 하지 말고...”

대화의 내용은 상당히 부도덕했지만 박 선배와 미미가 말할 때에는 그저 재미있게 들려왔다. 그날 미미의 새로운 지명손님에 관한 얘기를 우리 모두 대수롭지 않게 안주거리 삼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바로 그 곳에 ‘다른 세상’의 한 단면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사를 친다.’는 것은 사람의 감성을 조정해서 스스로 돈을 내놓게 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대단히 야비한 짓이고 범죄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미미는 그 50대의 지명손님에게 공사를 치지는 않았다. 그것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참으로 개운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 또한 ‘다른 세상’의 일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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