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단검 - 5부

진홍색 단검 - 5



늘 가던 길을 피하게 된 것은 역시나 유피가 신경 쓰여서이겠지만, 사실 내가 피하지 않아도 그녀 또한 나를 만나기 꺼려할게 분명했다. 어제의 그 일 이후로 ‘또 보자’라는 내 가벼운 인사말은 본 의미와는 정반대로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는 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회색 빛 벽이었다. 생명력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어둑어둑해지는 밤거리를 거닐면서 여자 엘프와의 정사를 되뇌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껏 보지 속에 정액을 쏟아 넣은 나를 보는 부드러운 그녀의 미소도.

「언제든지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순간 멍하니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라도 할 양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여자 엘프의 얼굴은 어찌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매력적인 미소 또한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

나는 거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근처 건물 벽을 짚고 생각에 잠겼다. 어찌해야 하나? 계속 만나야 하나? 그녀는 분명 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도 그녀가 싫진 않은데. 아니… 좋은데….

같은 종족이 아닌 엘프와 인간이 사귀는 게 가능한가라는 전제는 일단 두 번째 문제였다. 나에게는 유피가 있었다. 수 년간 같은 마을에서 거주하며, 늘 만나면 편해지고 즐겁고 동반자 같은… 그리고 서로에게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뗄레야 뗄 수 없는 애인과도 같은. 무언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직접적으로 도와주진 못했으나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런 고민들에 대해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였다.

언젠가 유피에게 장난 삼아 연하임을 들먹이며 ‘오빠’라고 한번만 불러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유피는 ‘뭐야, 그게’라며 때릴 듯 손을 확 쳐들고, 그러면서도 정작 때리진 않고 더듬거리듯 ‘오빠….’라고 불러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후로는 역시 창피하다며 기존의 이름으로 불렀으나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까지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이해관계였는데… 그랬는데…….

「같은 인간에게선 느낄 수 없는 훨씬 좋은 휴식 공간을 제공해줄게요」

여자 엘프의 섬세한 손가락 동작. 부드러운 키스. 꿈결과도 같은 정사. 그녀와 삶의 동반자가 된다면 매일매일 마법과도 같은 나날을 보낼 것만 같았다. 아니, 수 일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와 나누었던 정사를 돌이켜보면 이젠 인간과의 정사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자 엘프가 색(色)에 눈을 뜨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슴 떨리게 깨달았다.

“하아…….”

나는 건물 벽에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하릴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이러한 고민이 내 착각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나는 이 문제가 결코 가벼운 게 아님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어둠이 깔린 하늘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환기시키려 했고, 그것을 호응해주기라도 하듯 별빛이 내 눈동자에 하나 둘씩 반짝거리며 비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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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다. 어제 그녀가 손가락을 꼽으며 일곱 번째라고 말한 게 떠오르니까.

“왜 그러고 있어요?”

“…….”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여자 엘프 집 안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물론 그녀도 정말로 의문이 가서 물어본 말은 아닐 터였다. 나 또한 별로 대답할 만한 생각의 정리도, 확신도 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황감 속에서도 그녀와의 정사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었다. 여자 엘프와의 정사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마력 같은 게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최고의 쾌감이었고,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아쉬웠다. 나는 어느 새 하루 훈련을 마치면 이곳으로 들르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되어 있었다.

“하여튼, 생각이 너무 많으신 분이야. 정작 나랑 놀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필사적으로 하시면서. 후후….”

“…….”

어쩐지 모멸감을 일으킬듯한 말이었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면 그런 말은 한 귀로 흘려버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고, 여자 엘프는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상관없다는 자태로 살포시 걸어와 내 허리에 자신의 다리를 걸었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그녀의 기다란 다리가 또다시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편히 쉬고, 즐기다 가세요. 로키 씨.”

나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스위치가 올라간 것처럼 파악 하고 끌어안았고, 여자 엘프는 내게 밀려 모포 위로 쓰러지면서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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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흘이 지났다. 슬슬 날짜 기억하는 게 귀찮아진다.

“허억… 허억… 허억…!”

“흐응… 아아…….”

오늘은 그녀가 위에서 박아대고 있었다. 누워있는 나는 언제나처럼 사정을 늦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양쪽으로 벌려져 있는 여자 엘프의 통통한 허벅지가 기계적으로 힘을 싣고 그녀의 상체를 들어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이 피스톤 운동에 따라 윤기를 발산하며 이쪽저쪽으로 제각기 흩날려댔다.

내가 모포 자락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자 그녀가 안정시켜주듯 내 몸 위로 상체를 숙이고는 입술에 키스를 했다. 나는 정신없이 그녀의 혀를 빨면서도 완전히 그녀에게 제어당하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여자 엘프는 늘 그런 기분조차도 상쇄시킬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하게 껴안아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여자 엘프의 입 속으로 혀를 집어 넣었고, 우리 둘은 어떻게든 서로의 입 속에 혀를 깊게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악… 하악… 읍… 쩝쩝…….”

“으음… 으으응… 흐음…….”

그녀와 내 입술 가장자리는 온통 침으로 범벅이 됐다. 내 자지와 그녀의 보지가 맞물려 있는 서로의 성기에도 반짝거리는 씹물 투성이었다. 나를 끌어안고 키스에 몰두하던 그녀는 느낌이 오는지 점점 세고 강하게 내 자지에 박아대었다. 나도 자지 끝으로 기운이 몰리는 것을 느끼며 누운 채로 그녀를 마주 꽉 껴안았다.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아아… 으으으… 하악……윽…!”

“아… 아아아앙… 아앗, 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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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닷새 정도 지난 것 같다. 확실히 보름이 맞나? 아니면 좀 더 됐나? 덜 됐나? 아무려면.

“으으으으윽… 하아아악… 아…….”

“어머, 벌써 사정하심 안 돼요♡”

“하… 하지만…….”

매번 박아대는 그녀의 보지였지만 날이 갈수록 어째 점점 더 사정을 참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여자 엘프 보지는 매번 탄력성을 되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보지를 조절하는 신경도 굉장했다. 그녀는 인간 남자의 자지가 어떻게 하면 더 자극을 잘 받고 부풀어오르는지를 거의 완벽하게 꿰뚫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핥고 애무하는 차원을 떠나 보짓살의 움직임과 질 내부의 점막들까지도 자지를 자극시킬 최상의 조건으로 움직여갔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젠 그녀의 보지에 녹아나지 않을 남자들은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오늘은 어디서 구했는지 허벅지 윗부분까지 올라오는 길고 새하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불과 엉덩이 부분에서 몇 센티 밑까지 올라온 그것은 끝에 아름다운 무늬가 둘레를 치고 있었고, 여자 엘프의 미려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양쪽 허벅지를 두 팔로 끌어안고 미친 듯이 보지 속에 자지를 처박아대었다.

찌익-.

결국 참지 못하고 싸버리는 자지. 나는 그녀의 풍만한 허벅지 위 스타킹 감촉을 피부로 느끼면서 콸콸거리며 그녀의 보지 속에 정액을 쏟아 넣었다. 싸도 싸도 끝없이 나올 것만 같았다.

“흐으으으읍…… 허어어어억…….”

“으응… 음…….”

여자 엘프는 자신의 보지에 처박아진 자지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이따금씩 귀여운 신음을 흘리며 내 정액을 보지로 느껴가는 중이었다. 입술로 자기 손가락을 빨면서, 살짝 내리깐 눈 속의 눈동자를 빛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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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누워있던 나는 문득 잠에서 깨었다. 여자 엘프가 곁에서 같이 누운 채로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젠 며칠째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여자 엘프의 말을 듣고 잠시 그 동작을 중단했다.

“오래 안 주무셨어요. 아직 밖엔 어둠도 채 깔리지 않았는걸….”

나는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다시 추욱 늘어졌다. 바닥에 깔려있는 모포가 참으로 포근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특별히 힘 좀 쓰셨나 봐? 격렬했던 만큼 그대로 쓰러지듯 잠드시더만. 덕분에 나도 꽤 만족했고.”

그녀는 살짝 쿡쿡 웃더니 또다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뺨 위를 손가락으로 기어가듯 만졌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그녀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다. 나는 전부터 생각해오던 의문점을 이 기회에 꺼내보기로 했다.

“저기… 내가 좋아요?”

그녀는 누운 자세 그대로 전에 대답했던 것마냥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귀고 싶을 만큼 좋아요?”

또다시 끄덕여지는 고개.

“결혼하고 싶은 만큼 좋아요?”

똑같이 끄덕여지는 고개.

나는 한동안 침묵을 일관했고, 그녀는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여유 있게 기다렸다. 뭐라고 그녀에게 얘기를 하려던 나는 또다시 입을 닫고는 재차 머뭇거렸다.

“저…….”

그리고 겨우 열리는 입. 그녀는 무슨 말이 나오려나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인간과… 엘프가 결혼한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녀는 입술을 조금 오무리며 눈을 살짝 굴렸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온 말은 신빙성이 의심이 가긴 해도 충분히 있음직한 얘기였다.

“인간과 엘프는 서로 공존한 지 천 년이 넘는데 그런 일 하나 없을 것 같아요? 이곳 마을에서는 잘 모를진 몰라도 제가 사는 엘븐 포레스트 쪽에선 심심찮게 나도는 얘기죠. 요번에 인간과 결혼했다며.”

“저… 정말요?”

“우리들이 사는 기간에 비하면 그다지 특출한 일도 아니에요. 당신네들 기준으로 치자면 뭐랄까… 어디어디에 축제가 열린다더라. 그런 소식 정도?”

나는 또다시 가만히 입을 다물다가 다른 걸 물어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조금 머뭇거리며.

“인간과 엘프가 결혼해서 애를 낳는 건 어떻게 되는지 아나요?”

그녀는 문득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나는 뭔가 잘못 물어봤나 생각을 돌이켜봤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바라본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임신이 되냐고요?”

“아니, 아… 뭐 그런 점도 있고, 낳아진 아이는 어떻게 종족이… 판별되는지.”

그녀는 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곤 잠시 생각을 떠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과 다 똑같아요. 그런 문제는. 단지 엘프는 당신네들보다 긴 수명만큼 임신이 가능한 나이도 길어요. 따라서 한 명이 여러명을 낳는 무분별한 증식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때 아니면 자동으로 수정란이 차단되죠. 제가 당신 정액을 내부에서 다른 방향으로 흡수하면 착상이 된다고 생각하심 돼요.”

여자 엘프는 슬쩍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보지를 가리켰고,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얼굴이 벌개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킥 웃고는 마치 강의하는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종족은… 혼혈이 되죠. 인간과 엘프의 중간 사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태를 띠고 있어요. 귀도 뾰족하지 않고 수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길지 않죠. 단지 피만 혼혈이에요.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인간과 엘프의 자식인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글쎄… 과학이 발달하면 다른 점을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뭔가 더 물어볼 말이 생각났다가 너무 계산적이 되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궁금한 건 얼마든지 더 물어보라는 표정으로 포근하게 날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역시 천 년 가까이 사는 엘프의 특성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여자 엘프에게 결혼 신청을 하고 싶었다. 그녀 말마따나 재미있는 인생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니. 나는 참으로 특별하고 두근거리는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게다가 엘프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거의 늙지도 않을 것이고, 마력을 다루는 것 또한 능숙하기에 나도 어쩌면 비싼 마법 학교에서나 배움직한 마법들을 그녀에게서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행운아라고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로 모든 정황이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뭐였을까….

나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몽환적인 기분 속에서도 일말의 하나 가슴 속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 어렴풋하면서도 아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진 몰랐다. 그러나 표현은 어렵더라도 그 주체가 무엇인진 어느 정도 인지가 될 것도 같았다.

나는 마치 그 주체가 애원하듯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생각을 조금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할 필요 없어요. 전 언제나 여기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그녀도 살짝 몸을 일으키며 여느 때처럼 생긋이 미소지었다. 일말의 꺼림칙함도 제공하지 않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 그녀를 버릴 수 없는 포근함이 감싸왔고 나는 오히려 가슴이 쓰라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실컷 즐기고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거예요?’라든가 ‘이렇게 조건이 좋은데 왜 머뭇거리시나요?’ 따위로 추궁하면 그나마 이 쓰라림이 덜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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