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랑 - 단편

깊은 사랑




북쪽....먼 도시...


1.

“경훈씨…뭐해? 상가 가야지”


창밖을 보며 아무생각이 없던 경훈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맞다. 오늘 그녀의 상가에 가기로 한 날이었지.
우울한 기분, 그 상념을 떨치지 못한 채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가야죠”


직원을 태우고 병원 빈소에 가는 휠을 잡았지만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졌다.

…… × …… × ……

희은을 알게 된 지 3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던 교회 일을 그만두고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온 그녀는 업무와 스트레스로 고민했다.

그런 그녀를 도와주고 함께 출장을 가며 싹튼 사랑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등산을 하고, 테니스를 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보같이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했다.

그 때는 그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을 뿐이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4년째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멀어지기 시작한 그녀는 새로 사귄 남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으면 정이 멀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서먹해진 그녀는 날 피했고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보기가 어색해졌다.


5년째.

그녀가 결혼했다.

순백의 드레스를 걸치고 신성한 서약을 하는 순간 그제야 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예식장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했다.

눈물이 흘렀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야 내 어리석음과 용기 없음을 비웃었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며 그녀의 행복만을 바랬다.

그렇게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사이 그녀는 딸을 출산했고 돌 잔치에 가서 본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안녕....내 사랑..........’


2.

병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직원들과 빈소가 마련된 지하로 내려갔다.

상사를 듣고 찾아온 많은 조문객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녀는 까만 상복을 입고 슬픔에 겨워 흐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망치로 맞은 듯 답답했다.

화병에서 꽃을 뽑아 영전에 올리고 그녀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경훈씨”


“하아...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네...애기는?”


“엄마가 보고 있어요...뭐라도 드시고 가세요”


“그래”


직원들과 한 상을 받은 후 맥주를 들이켰다.

갑갑한 마음과 안타까움은 지독한 목마름이 되어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허어...이 사람 좀 천천히 마셔”


“........”


“그나저나 참 안됐어....결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한 2년 되었지?”


“네..맞아요”


직원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안주삼아 경훈은 맥주를 다시 들이켰다.


‘써....아주 써.....하지만 죽으면 이런 맛도 느낄 수 없겠지. 아니..마실 수도 없을 거야’


“희은씨가 올해 32이고, 신랑이 아마 35이었지....한참 때잖아....그런데 교통사고가 뭐야..애는 어쩌고....”


“그러게 말입니다. 다 팔자 소관이라지만 이제 겨우 32인데...하늘도 무심하내요”


직원들의 걱정과 한탄 소리,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안타까움의 동정 섞인 이야기들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빌어먹을....이렇게 미망인이 될 거라면...차라리 그 때.....내가...하아..관두자..관둬....이미 지난 일인데’


경훈의 눈빛이 우울한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3.

일주일 뒤 그녀가 출근했다.


초췌한 모습에 살이 빠진 것이 그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남모르게 한숨을 쉰 경훈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힘내.....희은아”


“네....고마워요.....모두들 고마워요...흑....”


“울면 안 되지...힘내고 살아야지...애 생각해서라도....”


“네.....그럴께요”


직원들이 모여들어 희은을 격려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내 전산망을 빌어 그녀에게 쪽지를 날렸다.

낮은창문 : 괜찮아?

희은이 고개를 들어 경훈을 힐금 본 후 키보드를 당겼다.

플로라 : 사실은 아니예요...그런 척 한 것 뿐이예요

낮은창문 : 애기는?

플로라 : 엄마에게 잠시 맡겼어요. 업무가 많은데 애를 제대로 돌 볼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낮은창문: 며칠 더 쉬지 그랬어?. 회사에 이야기 하면 되는데

플로라 : 집에 있음 그 사람 생각에 미쳐버릴 걸요. 힘들어도 여기 나와야 해요. 언제까지 슬퍼 할 순 없잖아요.

낮은창문 : 끄덕끄덕.....

플로라 : 일 하세요...

낮은창문 : 그래...이왕 나온 거니까...회사 있을 때만이라도 다른 생각은 하지마.

플로라 : 항상 고마워요...

낮은창문: 고맙긴....


정말로 그녀는 일에만 파묻혔다.

이벤트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 회사에서 그녀가 하는 일은 발주 받은 행사에 대하여 전반적인 기획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기획안은 항상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에게 좋은 일이었다.

이미 그늘이 되어 줄 남자가 없는데 능력마저 없다면 회사를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4.

그녀는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예전의 모습을 찾았다.

깔끔한 일처리, 딱 부러지는 말솜씨, 적당한 애교 옷맵시도 이 전 처녀적의 늘씬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옷차림이 잦아졌고 저녁 회식 때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휴게실을 찾았다.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애기의 안부를 묻고 남몰래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 모습을 우연히 경훈이 훔쳐봤다.


‘바보...저렇게 울 것을...괜히 강한척은...하아.....’

…… × …… × ……


1년 후....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회식에 참석한 경훈은 옆자리에 앉은 희은에 묘한 감상을 느꼈다.

단정히 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들이키는 그녀의 모습에 옛날 함께 하던 즐거웠던 추억이 겹친 것이다.


‘남편을 잃은 지 이제 넉달인가...힘들겠지...내색은 않해도...도와주고 싶네......’


경훈은 남몰래 한 숨을 쉬고 잔을 들이킨 후 희은에게 건넸다.


“잔 받아”


“네.....”


희은이 손목을 꺽어 술을 털은 후 경훈에게 되돌렸다.


“드세요”


“너무 강한 척은 하지 마”


“네?”


희은이 술을 따르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다 봤어...휴게실에서 전화하며 우는 거...힘들 때면...울어도 괜찮아...소리내어 울어도....하아....누가 흉을 볼까..적어도 난 아니야”


“다...보셨군요.”


“몰래 볼려고 한 건 아니야...담배 생각이 나서 휴게실에 갔더니 네가 그러고 있더라...차마 들어가질 못했어”


“거...거....두 사람 무슨 이야기를 속닥거려?..여긴 회식이야..회식..다들 즐겨야지”


부장님이 한 소리하자 머쓱해진 경훈이 긁적이며 대답했다.


“부장님..자리 바꿀까요....희은이가 저 싫다는 대요”


“엉....하하...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앉아야지....”


회식은 일찍 파했다.

단속이 심해 술은 적당히 마신 후 다들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했다.


“바래다 줄까?”


“괜찮아요?....경훈시도 술을...”


“뭐..좀 걸으면 깨겠지”


“네....”

5.

“애는 잘 커?”


“네..엄마가 잘 봐주시니 까요....그런데...애가 할머니를 엄마로 알까봐 그게 걱정이예요”


“일주일에 몇 번 애를 봐?”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지..어맛....”


희은이 걸음을 옮기다 발목이 삐어 휘청거렸다. 하이힐이 보도블럭 틈 사이에 빠진 것 같았다.


“발 삐었나 보내....”


“아파라...”


그녀가 자세를 바로하고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아무래도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팔짱 껴”


“네?”


희은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곁에 서자 팔을 조금 벌려주자 그녀가 팔짱을 꼈다.

뭉클한 가슴의 감촉이 팔에 느껴졌다.

왠지 술이 확 달아나는 기분에 기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게 몇 년 만인지...


“옛날 생각나내”


“옛날요?”


“응...희은이하고 등산가고...테니스치고...드라이브가고 그랬잖아”


“아..맞아요...나 그때 경훈씨 참 좋아했는데”


“뭐?”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자 희은은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뭐예요? 그 표정...설마 몰랐어요?”


경훈은 어지러웠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켰다.


‘뭐야....이 말은....날 좋아했단 거야?’


‘왜 모르고 있었지?’


‘왜 몰랐던 거지?’


‘알았다면...알았다면......제길........’


“정말이네...몰랐군요...어쩜 그렇게 둔할 수가....”


“아니...난...그게......”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는 경훈이었다. 그 모습에 희은이 발그레 웃었다.


“회사 처음 들어가서 도움 받고,,또 함께 다닌 시간이 얼마인데...설마 싫어하는 사람하고 그렇게 붙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바보 아니예요?”


이제 희은은 놀리기까지 했다.


‘이...이게...대체 뭐야....내가....난.....하아......그랬구나...그랬어......’


희은은 팔짱을 풀지 않고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 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조신한 내가 먼저 고백하긴 그렇고, 고민고민 하는 사이 다른 남자가 생긴 거죠”


“그...그랬어?”


‘아냐...나도 널 좋아했어...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좋아서...그런 건데....’


“화가 났죠...좋아하는 남자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그러는 사이 먼저 간 신랑하고 좋아하게 된거죠....”


문득, 경훈은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끊어졌던 인연이다. 그 것이 다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미망인이어도 상관없다.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그녀가 떠난 후에도 오직 행복하기만을 빌었다.

그랬기에 36의 나이에도 결혼하지 않았다.

떨치려 해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다른 여자는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보였네....”


“이제 아셨어요?...정말 바보라니까....”


“맞아...그 바보는 그 때도 널 사랑했고....그 후에도 사랑했고...”


희은이 어느새 경훈의 옆 모습을 보며 걸었다.


“지금도 사랑하지....현재 진행형이야....그건 끝이 없는 레일을 달리는 기차 같은 거지”


마침내 희은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왜..그 때는.....말하지.....않았죠?”


어느새 그녀의 음색이 갈라져 있어 가슴속의 흔들림을 내비쳤다.


“그래서 바보지..”


“지금..경훈씨..얼마나 비겁한지 아세요?”


희은이 싸늘하게 말을 되받았다.


“.......”


“그 말이 절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아세요?. 남편을 보낸 지 2년이예요....이제 겨우 상처에서 벗어나려는데.....왜......왜......그런 말을....이제야......흑......흑......”


희은이 경훈의 옷깃을 잡고 흐느꼈다. 주위를 지나던 행인들이 그 모습에 수군거렸다.


“예전에 못했던 말.....지금 한 거야....그게 비겁한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내 잘못이야...미안해”


“흑.....흑......”


그녀가 결국 경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가슴 앞섶을 다 적실 것 같았다.

밤하늘 어느새 몰려온 먹장구름은 달을 가리고 함박눈을 떨어뜨렸다.

두 사람은 어깨에 눈이 수북히 쌓일 때까지 오랫도록 그 곳에 머물렀다.


6.

1년 후...

희은은 네 살 된 지은이를 유아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은 늘 맞추기 어려웠지만 그럴 때면 원장이 애기를 돌보아 별 탈이 없었다.

게다가 지은이도 원장을 잘 따라 문제될 건 없었다.

다만, 경훈과의 관계가 아직도 매듭을 짓지 못한 게 불만이었다.

휴일이면 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유원지에 놀라갔고 함께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지은이도 경훈을 잘 따라...퇴근하면 항상 희은에게 언제 놀러 오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희은은 한 숨을 내쉬며 다독거려야 했다.

어느 날

희은은 지은이이가 먹은 것을 토하고 이마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것을 보고 가슴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시간은 벌서 9시를 넘기고 있었다.

택시를 부를까 했지만 고개를 젓고 경훈에게 전화했다.


“저예요...지은이가 많이 아파요”


“뭐?...왜?...병원은?”


놀란 경훈이 다급히 물었다.


“아직...”


“기다려...내가 바로 갈게”


“지금 어디예요?”


“사무실이야....애 옷 벗겨서 차가운 수건으로 문질러줘”


“네...빨리..오세요...겁나요”


5분이 채 되지 않아 경훈에게 전화가 왔다.


“아파트 다 왔어..애 데리고 바로 내려와”


“네....”


희은은 지은이 옷을 입힌 후 가슴에 안고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 끼익 소리가 나며 경훈의 차가 도착했다.

경훈이 뛰어 내려 뒷좌석을 문을 열자 희은이 올라탔다.

차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 × …… × ……


“걱정 많이 하신 것 같군요”


지은이를 진찰하던 당직 의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갑자기 토하고..열이 올라서...”


“괜찮습니다. 배탈이니까요...괜찮을 겁니다.”


“아...”


희은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훈 역시 별 탈이 없다는 의사에 말에 안색을 풀었다.


“해열제를 놓아드릴테니까...병원에 한 시간 정도 머물렀다 가세요.”


“네?..왜요?”


“애기가 언제 이상이 이상이 있을 지 모르니까요”


“아..네”


1시간 뒤

지은이의 열이 내리고 새근 새근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희은과 함께 아파트로 왔다.

…… × …… × ……

희은은 지은이를 내려놓고 옆에 누워있었다.

밖엔 경훈이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그녀는 지은이가 깊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일어났다.

장롱을 열고 붉은 바탕에 하얀 레이스가 가득한 홈드레스를 꺼냈다.

하얀색 브래지어와 팬티를 꺼내 침대에 올린 후 옷을 벗었다.


‘바보......’


희은은 팬티와 브래지어를 하고 홈드레스를 입은 후 경대에 앉아 향수를 뿌렸다.

불을 끄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7.

경훈은 작은 방에서 나온 희은이 날아갈 듯한 홈드레스를 입고 주방으로 가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시원한 거 드려요?”


희은의 물음에 경훈이 물었다.


“맥주 있어?”


“그런거 없어요....그럼?”


“그냥..쥬스 정도...알로에 쥬스 드려요?”


“어...”


희은이 거실 테이블에 잔을 내려 놓고 몸을 돌려 오디오장으로 갔다.

은은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그녀는 거실의 조명등을 바꾸었다.

붉고 푸른 빛이 섞인 조명 가운데 선 희은이 머뭇거렸다.


“저기요.....”


“.........”


“오늘은....여기서....자고....”


희은의 얼굴이 조명을 받아 더욱 붉게 변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경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햇다.


“아무래도 지은이가 아프면 곤란하니까...또...나도...아까처럼 그러면 당황하기 싫고....그러니까...여기서....자리는 제가 봐 놓을 테니까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먼저 자고 가란 말을 하기 너무 부끄러웠다.

경훈이 짓궂게 물었다.


“어디서 잘까?”


“그러니까....그게......”


“침실에서 자지 뭐”


“네..맞아요...침실.....거기요..”


마지막을 맺는 희은의 말이 기어들어가더니 고개를 숙였다.

목덜미까지 붉게 물든 희은을 보던 경훈이 일어나 다가왔다.


“가라 해도 가지 않으려던 참이었어...”


희은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앞에까지 다가온 경훈이 그녀의 턱을 올렸다. 두 눈을 감은 희은이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집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속절없이 뛰는 가슴이 원망스러웠다. 경훈의 숨결이 코앞에 다가오자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첫 키스는 부드러웠다.

그의 입술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터치하듯 지나갔다.

경훈이 희은의 허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꼭 밀착된 가슴언저리에서 그녀의 가슴을 느끼자 경훈 역시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키스는 조금 난폭했다.

희은은 두 뺨을 잡은 손에 이끌려 입술을 열었다.

그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왔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세 번째 키스는 강렬했다.

그가 허리를 조이며 힙을 애무했다.

그리고 그녀의 혀와 타액을 남김없이 경훈의 입속으로 끌어당겼다.

숨이 턱턱 막히고 까치발을 하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가 그녀의 몸을 사선으로 돌린 후 젖가슴을 잡았다.

가슴이 그의 손에 일그러지자 희은은 짜릿한 전류가 관통하는 것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그가 홈드레스 앞섶을 거칠게 풀어헤치고 브래지어의 끈을 어깨 옆으로 밀었다.


“하아........”


희은이 고개를 돌렸다.

경훈이 그녀의 힙을 꽉 움켜쥐고 브래지어의 컵을 활짝 젖혔다.

드러난 한 쪽 가슴이 조명아래 은은히 붉게 물들었다.

그대로 경훈은 가슴을 한 입 물었다.


“하아.....”


경훈이 홈드레스 단추를 아랫배까지 풀고 브래지어의 후크를 땄다.

치맛자락을 허리까지 걷고 팬티 위를 애무했다.

그녀의 목이 직각으로 뒤로 꺾이며 몸을 움츠렸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남자의 애무에 희은의 몸은 한껏 달았다.


“아아아......흑”


손가락 끝에 그녀의 계곡이 걸렸다.

미끄러지는 손가락 끝이 안으로 수욱 들어가자 희은이 등을 활처럼 휘며 그의 목에 매달렸다.


“하아.........”


고개를 젖힌 그녀의 두 눈과 입술이 쉴 사이 없이 떨렸다. 팬티를 사이에 두고 계곡의 입구를 강렬하게 누르는 손가락에 더할 수 없는 쾌감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손가락은 계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꾸욱 눌러가며 오갔다. 희은의 신음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하아아.......하아아.........”


희은이 다리 하나를 경훈의 허벅지에 걸었다.

목을 감았던 손이 어느새 그의 뒷머리를 잡아 뽑을 듯 흔들렸다.

찌뿌린 그녀의 눈썹과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사이 쾌락에 겨운 흐느낌이 흘렀다.

촉촉이 젖은 팬티를 젖히고 경훈이 손을 넣었다.

그녀의 힙이 뒤로 빠지며 발끝을 고추 세웠다.


“아윽.......”


경훈이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매자 희은은 혀를 내밀었다.

허공에서 경훈과 희은의 혀가 뒤엉켰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계곡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희은은 울 것 같이 흐느꼈다.


“하악........흑.........하아아..........”


경훈이 손가락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두 손가락이 질 속에서 요동을 치자 희은은 미칠 것 같은 쾌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질 벽을 긁는 손가락이 여실히 느껴졌다.

단내를 풀풀 토하던 희은이 경훈의 입술을 찾아 거칠게 빨았다.


“나...더 이상은......하아아.........”


경훈은 희은을 안아들어 침실로 갔다.

침대에 내려 놓은 경훈이 옷을 모두 벗고 침대에 올랐다.

그녀의 무릎을 세운채 팬티를 벗겼다.

둘둘 말려 벗겨진 팬티를 다리 한 쪽에 걸고 희은의 무릎을 활짝 벌렸다.


“흑......”


희은은 자신의 은밀한 닿는 경훈의 뜨거운 숨결에 몸이 녹아내릴 듯한 열기와 흥분에 사로잡혔다.


“하악........하아아아........”


그녀의 몸이 튕기듯 일어났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경훈의 혀가 계곡을 휩쓸듯 훑은 것이다.

까칠한, 고양이의 그것 같은 혀가 계곡을 쓸고 지나가자 그녀의 가슴이 출렁거리며 힙을 들었다 놓았다.


“아윽........하아아.......”


희은이 베게에 옆얼굴을 묻고 깊게 길고 흐느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 그의 혀가 자신의 그 곳을 빨고 있는 소리였다.

계곡에서 애액이 홍수처럼 흘렀다.

애액은 타액과 섞여 벗기지 않은 치마를 적시고, 시트마저 적시고 말았다.

경훈이 혀를 창처럼 꼿꼿이 세워 계곡을 찌르자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이 튕겼다.

급기야 경훈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꾸욱 누르고 말았다.


“하아악......하아아......아아아......”


희은은 벗겨진 것은 팬티 하나 뿐이었다. 다만 홈드레스와 브래지어가 반쯤 벗겨졌을 뿐이었다.

경훈은 검은 숲으로 가득 찬 계곡을 애무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절정이 찾아왔다.

사내를 느끼는 것이 오랜만이어서 그 곳을 애무하는 것만으로 철정에 오른 것이다.


“아아아.....하아..........”


희은은 축 늘어져 아직도 가쁜 숨을 토했다. 애액이 계속해서 계곡을 통해 흘러나왔다. 아랫배가 울컥일 때마다 분출하듯 애액이 쏟아졌다. 그 모든 것을 경훈은 남김없이 마셨다.


“흑.......”


희은이 몸을 비틀었다. 경훈이 힘을 보태자 자연히 엎친 자세가 된 희은의 힙을 세웠다.

그녀가 얼굴을 시트에 묻고 흐느꼈다.

경훈이 물건을 계곡으로 가져가 깊숙이 찔러 넣었다.


“학.........”


부르르

삽입의 순간 희은이 고개를 치켜 들더니 짧은 신음을 토했다.

자신의 계곡에 삽입된 물건을 조이며 시트를 손에 쥐고 비틀었다.


“하아아........하윽.........아아아.....”


그녀가 토해낸 신음은 모두 시트에 쏟아졌다.

천천히 경훈이 물건을 왕복하자 희은은 터질 듯한 충만감에 몸을 떨었다.

계곡에서 시작된 쾌감은 이내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라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었다.

눈앞에 붉은 빛이 가득하고 몸이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계곡을 점령한 물건은 난폭했다.

그녀가 오랜만에 하는 섹스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폭군이었다.

왕복하는 움직임은 갈수록 거칠었고 그럴수록 희은이 조여 대는 힘은 대단해졌다.


“아윽.......아아아아........하아아......너무.....좋아.........흐윽.....”


희은이 팔을 뒤로 돌리자 경훈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거칠게 왕복했다.

헐렁한 브래지어와 젖가슴이 출렁거려 시트에 닿을 것 같았다.

경훈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사정할 것 같은 압박감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성기를 조이던 힘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확 풀어졌다.

두 번째 절정이 찾아왔다.

희은은 엎친 채로 시트에 무너져 숨가쁘게 신음했다.

아랫배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가슴이 흔들렸다.


“하아아.......하아......아아아.....”


옆 얼굴을 묻은 희은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경훈이 성기를 빼고 희은을 바로 눕혔다.


“하아....또?....그...그만해요...나 더 이상은....하윽...........하아아......이....나쁜......흐윽...”


사정없이 계곡을 벌린 성기가 거리낌 없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희은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고, 두 팔로 그의 등을 안은 채 힙을 움직였다.

…… × …… × ……


“나.....나.....나올 것...같아요....하윽......아아.........흐윽..”


“.........”


“그..그만해요.....제발.....아아........흐윽.........”


“.............”


“이젠,,,,정말....아악.......”


“...............”


밤은 깊었고 경훈의 욕망은 식지 않았다.

희은이 그의 품에서 벗어난 것은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 올 무렵이었다.



8.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청년의 맹세는 여전히 굳건한데 사람은 변하였다.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여인은 세상을 일찍 떠났다.

귀 밑이 하얗게 물들었고 주름살이 얼굴을 덮었다.

…… × …… × ……

노인은 의자에 앉아 옛날을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그 옆에 앉은 30대 초반의 여인은 과일을 깍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이제 대 여섯 살 된 아이가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까까,,,사 주세요”


노인은 어느새 다가와 칭얼대는 손녀딸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뭐 먹고 싶니?”


“음......아이스크림.....사줘”


“그래...우리 손녀 딸....사 달래는 데 많이 사 줘야지”


“응...마니..마니..사줘야 해”


“허허......”


“어머..애는 할아버지 몸도 불편하신데....그럼 못 써....”


옆에서 과일을 깍던 지은이 야단을 치자 아이는 금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엄마...미워.....할아버지 좋아......”


“조게.....엄마는 싫고 할아버지만 좋대”


노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거실 장 속 오래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결혼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젊었다.

그 옆에 서서 미소 짓는 여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사랑은 그가 세상을 뜨는 날 까지 끝나지 않을 터였다.


‘허허.....우리 다시 만날 날이 멀지 않았구려.....몸이 예전 같지 않으이...기력이 날로 쇠잔해지니...’


‘하지만 기쁘다오...당신을 볼 수 있는 날이 그 만큼 빠를 테니 말이오....하아.....’


귓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사위가 돌아온 모양이다.

아빠를 외치며 달려가는 손녀딸이 무엇보다 정겹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곱게 차려입은 희은의 모습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기다리시오...내 곧 가리다’


따스한 봄빛이 노인을 하염없이 비추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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