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남매.
2018.05.17 04:10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의 풍광부터 자랑을 하고 싶다.
내가 나고 자란 이 섬은 마치 땅콩처럼 가운데가 양쪽으로 폭 패여 있는데 본섬과 마주보고 있는
패인 곳은 천혜의 어선 기지로 폭풍우가 몰아치며 많은 배들이 피 항을 하는 곳이고 또 그런
지리적인 탓에 사람도 제법 많아 초등학교의 분교가 있을 정도이지만 그에 비하여 내가 살고 있는
남해안을 끼고 패여 있는 곳은 거의 암벽으로 이루어져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기에 진짜 멋진 곳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조금 어려운 곳인데 이유는 태풍이 몰아치며 직접적으로 태풍을 바고 맞아야 하기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 봐야 내가 어렸을 때는 세 가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도회지로 나가고 오로지
우리 집만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데 다행인 것은 마치 평풍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태풍의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어 그대로 살고 있지만 실상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전에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할아버지 말처럼 용왕님과 담판을 하느라고 아직 용궁에 머물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돌아온다며
이사를 못 가게 한 영향이 더 커서 머물렀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빼도 박도 못 하고 거기에 살면서
낚시꾼을 태워주거나 낚시꾼을 상대로 민박을 하고 또 음식을 해주며 얼마간의 돈을 받아 저축도 하고
낚시꾼이 없는 계절이면 가까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본섬이나 우리 섬의 사람이 많은 곳에 내다 판다.
그런 혼자 사느냐?
아니다 나의 동생과 같이 사는데 그 동생 문제가 조금은 복잡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훨씬 전에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남태평양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한 번 승선을 하였다가
그 배가 무슨 사고가 나는 바람에 겨우 일 년을 타다가 부산에 도착을 하였는데 고향인 이곳에 가 봤자
뾰쪽한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든지 부산에 혼자 눌러 살며 다음 배를 타기를 기다리다가 부산에서
한 여자와 눈이 맞아 동거를 하였는데 아버지는 원양어선만 타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차일피일
앞에 배에서 내리며 받은 배당금만 축을 내며 살았는데 일 년이 지나자 아버지와 동거를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는 더 이상 기다리며 힘들게 살수가 없다며 도망을 가 버리자 아버지는 어쩔 수가 없어서
그 핏덩이를 데리고 왔는데 걔가 바로 지금은 나에게 우일한 혈육이기도 하며 함께 민박을 하며 살고 있다.
난 외딴 섬에 살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다녔다.
학교 이야기를 하자니 진저리가 난다.
초등학교만 하여도 그렇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분교가 있는 곳까지는 우리 집에서 마치 암벽등산을 하듯이 올라가며 바위와 바위 사이에
비만 안 들어오게 해 둔 움막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나의 허름한 자전거를 두는 장소였다.
그럼 그 자전거를 타고 20분 이상을 달려야 분교가 나왔다.
그래도 등교 길을 좋은 편이었다.
거의 내리막길이요 평탄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하교 길은 고통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은 질질 끌고 오다가 평탄한 길이면 타고 오고 다시 오르막에서는 끌고 가고
그렇게 30분 이상을 와야 우리 집에 올 수가 있었으니 그런 길을 6년을 다녔으니 등치도 작은 녀석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겠는가.
중학교는 본섬에 있기에 더 힘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처럼 우리 뒤편의 초등학교 분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는 자전거는 초등학교 분교에 세워두고
배를 타고 본섬으로 가서 공부를 하였고 공부를 마치면 다시 배를 타고 분교로 와서 자전거를 타고 끌고 집으로 오면 파김치가 되는 일을 허다하였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고등학교에 다니게 하였고 본섬에서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였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얼마 안 가서 군대에 갔고 군대 동기의 도움으로 나는 도회지에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외딴 섬인 고향으로 와야 하였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 한 엄마가 낚시꾼의 꾐에 빠져 낚시꾼과 도망을 가 버리자 귀도 멀고 꼼짝을 못 하는
할아버지를 여동생에게 맡기고 수발을 들게 하며 나면 편하게 도회지에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낚시꾼의 꾐에 빠져 뭍으로 가고 2년 만에 내가 섬으로 왔을 때는 내 나이 27살이었고
배다른 여동생은 19살이었는데 내가 섬으로 왔지만 낡아빠진 배는 바다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렇다고 도회지에서 있으면서 저축이라고 해 둔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배를 하나 장만을 하련만을
그럴 처지도 아니라 노를 젓는 배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자 앞이 막막하였는데 놀랍게도
여동생이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던지 뭉텅이 돈다발을 나에게 주며 배를 한 대 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난 여동생에게 그 돈이 어디에서 났냐고 물을 생각도 못 하고 나는 본섬으로 나가 엔진이 달린 배를
한 대 사서 집 앞의 포구에 묶자 세상이 모두 나의 것으로 보이며 희망도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난 낚시꾼이 몰리는 철이면 미끼와 간단한 채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살다간 폐가를 고쳐서 본격적으로 민박을 시작하였다.
난 낚시꾼을 이근의 섬이니 갯바위로 수송을 하는 일을 맡았고 여동생은 민박을 하는 낚시꾼의 식사와 방 청소를 맡았다.
손님은 의외로 많았다.
물론 우리가 잘 대접을 해서가 아니라 큰 고기들이 물린 탓이었다.
첫 해는 아무 일도 없는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냈고 여름이 되자 나와 여동생은 가까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본섬의 횟집에 대어주었다.
고기를 잡는 일은 낚시꾼을 상대로 버는 것에 비하여 수입은 적었고 힘은 더 들었다
그 해 초가을에 병석에 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전 재산을 처분한다고 하여도 배 말고는 살 사람도 없었고
배를 판다고 하여도 도회지에 나가서 셋방 하나 구할 돈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섬에 머물기로 하였다.
다시 낚시 시즌이 돌아왔다.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평일에도 낚시꾼은 몰려들었다.
“오빠 얼마나 바쁜지 오줌 누고 닦을 시간도 없어”하루는 낚시꾼들을 갯바위와 무인도에 내려주고 오자 아침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이상한 말을 하였다.
“얘 너 나이가 몇 인데 그런 말을 하니”하고 핀잔을 주고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난 낚시꾼이 밑감을 적게 가져왔다며
더 가져다 달라기에 그것을 들고 다시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낚시꾼에게 주고는 점심 주문을 받고 섬으로 왔다.
매일 같이 그런 일의 반복이었지만 낚시꾼이 많아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일은 그 해 그러니까 제 작년 봄의 낚시 시즌 막바지 때의 일요일의 일이었다.
그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낚시꾼을 갯바위와 무인도에 태워 주기에 바빴다.
워낙 손님이 많아 집에 들 릴 시간이 없어서 여동생이 싸주는 보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먼저 도착을 하여 낚시를 하던 낚시꾼 중에 하나가 밑밥이 파도에 휩쓸려
함께 간 동행 것을 쓴다고 하여도 많이 부족하겠다고 하며 밑밥을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자 거의 암벽등반에 가깝게
집으로 올라가야 할 일이 꿈같았지만 손님이 왕이란 생각에 배를 몰고 집 밑의 선착장에 계류를 시키고 올라갔다.
“아이 아저씨 싫어”여동생의 목소리였다.
“야 전에 5만원 줬으면 이번에도 5만원이면 되잖아?”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난 민박 요금을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이 아저씨 물가란 물가는 다 오르는데 제 몸 값은 안 오르고 그대로면 안 되잖아요? 만원만 더 써요”놀라운 말이 여동생 입에서 나왔다.
“애라 모르겠다, 좋아 만원 더 쓰지 자 6만원이다 어서 벗어”하는 말이 들렸다.
“여긴 안 돼요 우리 오빠 올지 모르니 저 위에 집으로 가요”여동생의 말에 나는 놀라며 몸을 숨겼다.
“흐흐흐 그래 여 예쁜 것”여동생과 낚시꾼 차림의 남자가 함께 부엌에서 나와 폐가를 고쳐 민박 손님을 받는 집으로 올라가며
그 낚시꾼 차림의 남자는 연방 여동생의 엉덩이를 만지고 젖가슴 안으로 손을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동생은 아무 저항도 안 하고 그 낚시꾼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부엌칼을 들었다.
가 여동생과 그 낚시꾼을 함께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아무 밑천도 없이 고향으로 오자 여동생이 뭉텅이 돈다발을 준 것이........
그것은 그 때 생각을 해 보니 낚시꾼에게 몸을 팔아 모은 돈이란 것을 알자 슬그머니 부엌칼을 제 자리에 놓고
나는 낚시꾼이 부탁을 한 밑밥만 챙겨가지고 암벽을 내려갔으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어떻게 내려갔는지도 모르게
겨우 내려가 배를 몰고 낚시꾼에게 밑밥을 주고 바다 가운데에 배를 띄우고 밑반찬으로 쓸 고기를 낚시로 잡으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물만 흘리며 고기를 잡다가 낚시꾼들이 철수를 하기에 그들을 태우고 섬으로 왔다.
집에 도착을 하였을 때는 여동생 혼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있었다.
그 낚시꾼으로 보이든 사람도 없었다.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 아까 난제 낚시꾼 하나가 왔다가 전화를 받고 가 버렸어”저녁상을 앞에 두고 여동생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넌지시 물으며 여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일은 무슨 일?”여동생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변한 것을 나는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배를 장만을 해 주었는데 어떻게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며 마지막 낚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여동생과 함께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본섬에 내다 팔아야 할 시기가 왔다.
고기를 잡는 데는 물때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물을 쳐 두고 새벽에 나가서 그물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날도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여동생과 함께 바다로 나갔다.
한참 그물을 올리는데 여동생 모습이 안 보였다.
아무리 일어나서 봐도 여동생 모습은 안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기관이 있는 배 운전석으로 가서 밑의 기관실을 봤다.
“오빠 뭘 봐 오줌 누는 것 처음 봐?”여동생이 깡통 위에 앉아 오줌을 누며 눈을 흘겼다.
“미....미안하다”하며 눈을 돌렸다.
그러나 검은 피부의 여동생 엉덩이의 하얀 살결이 눈에 아롱거렸다.
“..............”서서히 혼자 그물을 끌어올렸다.
“변태”여동생이 언제 왔는지 올린 그물에서 고기를 때어 선창의 물에 던지며 눈웃음을 치며 흘겼다.
“그런 넌?”아차차 하였지만 이미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내가 뭐?”여동생이 벌떡 일어서며 대들었다.
“................”참으려고 말을 안 하며 그물만 당겼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어서 말 해”여동생이 앙칼지게 말을 하며 계속 대어들었다.
“................”다시 참았다.
아니 참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말이야 어서 말 해 어서”내가 당기든 그물에서 나의 손을 때게 하며 또 대어 들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저씨 물가란 물가는 다 오르는데 제 몸 값은 안 오르고 그대로면 안 되잖아요? 만원만 더 써요”여동생이 낚시꾼 차림의 남자에게 하였던 말을 그대로 하였다.
“..................”여동생은 놀란 토끼눈을 하였다.
“여긴 안 돼요 우리 오빠 올지 모르니 저 위에 집으로 가요”계속 여동생이 하던 말을 토씨 하나 안 빠트리고 그대로 하였다.
“흑흑흑”여동생이 그대로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었다.
“울지 마”난 여동생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었다.
“오빠 내가 더러운 여자지 흑흑흑”여동생이 내 품에 안기며 계속 울었다.
“아니야 나가 너무 너를 몰랐다 몰랐어. 미안 해”여동생을 품에 지그시 안으며 말을 하였다.
“아니야 오빠 나가 더러워서 함께 있기 싫었지? 흑흑흑”여동생은 계속 울었다.
“아니야 넌 마음이 고운 천사야 그렇게 해 가며 이 배를 나에게 사 줬지 않니?”하고 말을 하자
“정말 내가 안 더러워?”여동생이 내 품에서 빠져 나가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암 깨끗하지 깨끗해”하고 웃으며 말하자
“그럼 오빠 내 부탁 하나 들어 줄 거야?”여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뭐?”하고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날 오빠가 가져”여동생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뭐? 뭐라고?”놀라며 묻자
“싫은 거지? 더러워서 싫은 거지?”눈물을 다시 흘릴 기세였다.
“아니야, 아니야 넌 내 여동생이야 여동생”하고 말을 하자
“오빠가 난 좋아 제발 날 한 번만이라도 안 아 줘”여동생이 나의 품으로 다시 안기며 말을 하였다.
어떻게 해 야 할지를 몰랐다.
어떻게 여동생의 마음을 돌리게 할 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오빠 가만있어, 응 알았지?”여동생은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입는 비닐로 된 물 옷 위로 나의 불룩해진 좆을 잡았다.
“얘 난 네 오빠야 오빠”하며 밀쳤으나 여동생은 나처럼 어부의 딸이라 쉽게 잡은 좆을 놓지 않았다.
“따라 와”여동생이 웃으며 나의 좆을 당겼다.
“아야 아파 놔”하고 말을 하였으나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들리는 것을 파도소리 뿐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여동생의 힘에 의하여 기관실로 끌려가야 하였다.
말이 기관실이지 트럭의 엔진이 고작이요 엔진 옆에는 사란 하나가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여름에 고기를 잡다가 잔뜩 더우면 거기에 누어서 오침을 즐기는 그런 공간이었다.
여동생은 다짜고짜 나를 거기에 눕혔고 눈을 깜짝 할 사이에 비닐 옷을 벗기더니 바지와 팬티도 벗겼다.
“히히히 이제 내가 오빠 강간을 한다, 히히히”여동생은 나의 알몸을 내려다보며 비닐 옷을 벗더니 바지와 티도 다 벗어버렸다.
친여동생이 아니었다면 난 계속 알몸을 감상하였겠지만 친여동생이란 생각 때문에 난 눈을 감아야 하였다.
“그만 두면 아~~~”여동생이 내 몸으로 올라오자 나는 눈을 감고 여동생의 가슴을 밀며 말을 하기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말이 체 끝나지 않았는데 나의 좆이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히히히 오빠 동생에게 강간당하는 기분이 어때?”여동생이 하체를 조금씩 움직이며 물었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오빠 앞으로 몸 안 팔게 대신에 오빠가 날 사랑 해 줘”여동생이 상체를 내 상체에 포개며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몸이 완전히 포개어 지자 나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제 여동생이 아니었다.
나는 여동생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빨았다.
나는 여동생의 입술을 빨면서 생각을 하였다.
여동생 자신의 말로는 여동생이 자신은 강간을 한다곤 하였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입대 이틀을 앞두었을 때 그때는 내 나이 21살이었고 여동생 나이 갓 13살이었다.
외딴 섬에다가 전부터 남자가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 많이 죽는 바람에 여자가 많았고
그러나 남자는 홀로 된 과부를 아주 쉽게 넘보았고 그렇게 되자 나이에 불문하고 남녀 간의 문란함은 뭍과는 너무나도 다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날 내 여동생은 나에게 군대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장면을 사 달라고 하였고 요즘이야 하찮은
자장면이지만 그 자장면도 우리 섬에서는 먹을 수가 없었기에 분교가 있던 곳에서 배를 타고
본섬으로 가서야 먹을 수가 있었는데 여동생과 난 본섬에서 자장면을 먹고 분교를 지나 우리 집으로 오는데
“오빠 뭍에 여자들은 예쁘다며?”여동생이 웃으며 물었다.
“뭐 별로야 별로”하자
“오빠 난 어때?”웃으며 묻기에
“너야 미인이지”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자
“헤헤헤 그런 오빠 군대에 다녀오면 내거 오빠 색시 할까?”여동생은 느닷없는 질문을 하기에 군밤을 한 대 쥐어박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서 살다가 섬으로 왔을 대 여동생이 나에게 돈다발을 주면서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오빠 뭍에 여자 남겨 두고 온 것은 아니지?”하고 묻기에
“아니 왜?”하고 묻자
“오빠 군대에 가기 전에 자장면 먹고 오면서 한 말 기억 안 나”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짜식 별걸 다 가지고 그래”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돈다발에만 신경을 썼지 여동생의 말은 흘려들었었다.
여동생이 나의 몸 위에 올라타고 나의 좆을 자신의 보지에 박고 몸을 포개자 흘려서는 안 되었을 말이란 것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여동생은 내 스스로가 자기를 안아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미치자 난 더 힘주어 여동생의 입술을 빨면서 하체를 상하로 움직였다,
“오빠 나 그래도 낚시꾼에게 몸을 줬지만 콘돔 안 하면 안 했다”여동생이 입술에서 입술을 때며 말을 하였다.
“............”여동생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여동생과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파도가 배를 흔들리게 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흔들렸다.
“그리고 알고 보면 내 처녀 오빠가 가져 간 셈이다 알아?”여동생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어...언제 내가?”놀라며 여동생 가슴을 밀치며 물었다.
“헤헤헤 실은 오빠 군대에서 휴가 왔을 때 집에서 입었던 팬티 있지 그 팬티 앞을 넣어서 처녀막 깼거든, 헤헤헤”여동생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저.....정말?”놀라며 묻자
“헤헤헤 증거 집에 그대로 있다 뭐 매롱”여동생은 놀라운 사실을 서슴없이 나에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여동생이 나의 가슴을 짚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오래 가지를 못 하였다.
난 한 마디 예고도 안 하고 여동생 보지 안에 나의 분신을 뿜었다.
여동생은 눈을 흘기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였다.
오빠의 물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그렇게 여동생과 나는 배 위에서 처음으로 아니 여동생의 말로는 두 번째라지만 나는 처음으로............
바다 속 용궁에 있는 아버지가 하나가 된 우리를 축하하였던지 그물을 올리자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그물에 걸려 있었다.
본섬에 가서 많은 돈을 받고 횟집에 고기를 넘기는데 여동생은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오더니 나에게 귀에 대고 말을 하였다.
“오빠 피임약 사 왔어”라고........
집으로 왔다 몇 마리 남겨둔 고기를 회로 떠서 술과 함께 마셨다.
“오빠 이게 오빠가 나의 처녀를 가져간 증거야”술이 한잔 된 여동생이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검붉은 피가 말라 붙어 변색이 된 팬티 한 장을 가지고 왔다.
분명히 휴가를 와서 입었던 나의 팬티였다.
이제 나와 여동생은 방을 하께 쓴다.
아니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아니 거의 매일 몇 번씩 하나가 된다.
밤이고 낮이고 집이고 선창가에고 배위고 구분을 안 하고 수시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갈매기를 벗을 삼고 살면서..............
내가 나고 자란 이 섬은 마치 땅콩처럼 가운데가 양쪽으로 폭 패여 있는데 본섬과 마주보고 있는
패인 곳은 천혜의 어선 기지로 폭풍우가 몰아치며 많은 배들이 피 항을 하는 곳이고 또 그런
지리적인 탓에 사람도 제법 많아 초등학교의 분교가 있을 정도이지만 그에 비하여 내가 살고 있는
남해안을 끼고 패여 있는 곳은 거의 암벽으로 이루어져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기에 진짜 멋진 곳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조금 어려운 곳인데 이유는 태풍이 몰아치며 직접적으로 태풍을 바고 맞아야 하기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 봐야 내가 어렸을 때는 세 가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도회지로 나가고 오로지
우리 집만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데 다행인 것은 마치 평풍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태풍의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어 그대로 살고 있지만 실상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전에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할아버지 말처럼 용왕님과 담판을 하느라고 아직 용궁에 머물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돌아온다며
이사를 못 가게 한 영향이 더 커서 머물렀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빼도 박도 못 하고 거기에 살면서
낚시꾼을 태워주거나 낚시꾼을 상대로 민박을 하고 또 음식을 해주며 얼마간의 돈을 받아 저축도 하고
낚시꾼이 없는 계절이면 가까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본섬이나 우리 섬의 사람이 많은 곳에 내다 판다.
그런 혼자 사느냐?
아니다 나의 동생과 같이 사는데 그 동생 문제가 조금은 복잡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훨씬 전에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남태평양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한 번 승선을 하였다가
그 배가 무슨 사고가 나는 바람에 겨우 일 년을 타다가 부산에 도착을 하였는데 고향인 이곳에 가 봤자
뾰쪽한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든지 부산에 혼자 눌러 살며 다음 배를 타기를 기다리다가 부산에서
한 여자와 눈이 맞아 동거를 하였는데 아버지는 원양어선만 타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차일피일
앞에 배에서 내리며 받은 배당금만 축을 내며 살았는데 일 년이 지나자 아버지와 동거를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는 더 이상 기다리며 힘들게 살수가 없다며 도망을 가 버리자 아버지는 어쩔 수가 없어서
그 핏덩이를 데리고 왔는데 걔가 바로 지금은 나에게 우일한 혈육이기도 하며 함께 민박을 하며 살고 있다.
난 외딴 섬에 살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다녔다.
학교 이야기를 하자니 진저리가 난다.
초등학교만 하여도 그렇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분교가 있는 곳까지는 우리 집에서 마치 암벽등산을 하듯이 올라가며 바위와 바위 사이에
비만 안 들어오게 해 둔 움막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나의 허름한 자전거를 두는 장소였다.
그럼 그 자전거를 타고 20분 이상을 달려야 분교가 나왔다.
그래도 등교 길을 좋은 편이었다.
거의 내리막길이요 평탄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하교 길은 고통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은 질질 끌고 오다가 평탄한 길이면 타고 오고 다시 오르막에서는 끌고 가고
그렇게 30분 이상을 와야 우리 집에 올 수가 있었으니 그런 길을 6년을 다녔으니 등치도 작은 녀석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겠는가.
중학교는 본섬에 있기에 더 힘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처럼 우리 뒤편의 초등학교 분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는 자전거는 초등학교 분교에 세워두고
배를 타고 본섬으로 가서 공부를 하였고 공부를 마치면 다시 배를 타고 분교로 와서 자전거를 타고 끌고 집으로 오면 파김치가 되는 일을 허다하였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 아버지는 고깃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고등학교에 다니게 하였고 본섬에서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였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얼마 안 가서 군대에 갔고 군대 동기의 도움으로 나는 도회지에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외딴 섬인 고향으로 와야 하였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 한 엄마가 낚시꾼의 꾐에 빠져 낚시꾼과 도망을 가 버리자 귀도 멀고 꼼짝을 못 하는
할아버지를 여동생에게 맡기고 수발을 들게 하며 나면 편하게 도회지에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낚시꾼의 꾐에 빠져 뭍으로 가고 2년 만에 내가 섬으로 왔을 때는 내 나이 27살이었고
배다른 여동생은 19살이었는데 내가 섬으로 왔지만 낡아빠진 배는 바다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렇다고 도회지에서 있으면서 저축이라고 해 둔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배를 하나 장만을 하련만을
그럴 처지도 아니라 노를 젓는 배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자 앞이 막막하였는데 놀랍게도
여동생이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던지 뭉텅이 돈다발을 나에게 주며 배를 한 대 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난 여동생에게 그 돈이 어디에서 났냐고 물을 생각도 못 하고 나는 본섬으로 나가 엔진이 달린 배를
한 대 사서 집 앞의 포구에 묶자 세상이 모두 나의 것으로 보이며 희망도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난 낚시꾼이 몰리는 철이면 미끼와 간단한 채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살다간 폐가를 고쳐서 본격적으로 민박을 시작하였다.
난 낚시꾼을 이근의 섬이니 갯바위로 수송을 하는 일을 맡았고 여동생은 민박을 하는 낚시꾼의 식사와 방 청소를 맡았다.
손님은 의외로 많았다.
물론 우리가 잘 대접을 해서가 아니라 큰 고기들이 물린 탓이었다.
첫 해는 아무 일도 없는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냈고 여름이 되자 나와 여동생은 가까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본섬의 횟집에 대어주었다.
고기를 잡는 일은 낚시꾼을 상대로 버는 것에 비하여 수입은 적었고 힘은 더 들었다
그 해 초가을에 병석에 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전 재산을 처분한다고 하여도 배 말고는 살 사람도 없었고
배를 판다고 하여도 도회지에 나가서 셋방 하나 구할 돈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섬에 머물기로 하였다.
다시 낚시 시즌이 돌아왔다.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평일에도 낚시꾼은 몰려들었다.
“오빠 얼마나 바쁜지 오줌 누고 닦을 시간도 없어”하루는 낚시꾼들을 갯바위와 무인도에 내려주고 오자 아침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이상한 말을 하였다.
“얘 너 나이가 몇 인데 그런 말을 하니”하고 핀잔을 주고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난 낚시꾼이 밑감을 적게 가져왔다며
더 가져다 달라기에 그것을 들고 다시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낚시꾼에게 주고는 점심 주문을 받고 섬으로 왔다.
매일 같이 그런 일의 반복이었지만 낚시꾼이 많아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일은 그 해 그러니까 제 작년 봄의 낚시 시즌 막바지 때의 일요일의 일이었다.
그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낚시꾼을 갯바위와 무인도에 태워 주기에 바빴다.
워낙 손님이 많아 집에 들 릴 시간이 없어서 여동생이 싸주는 보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먼저 도착을 하여 낚시를 하던 낚시꾼 중에 하나가 밑밥이 파도에 휩쓸려
함께 간 동행 것을 쓴다고 하여도 많이 부족하겠다고 하며 밑밥을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자 거의 암벽등반에 가깝게
집으로 올라가야 할 일이 꿈같았지만 손님이 왕이란 생각에 배를 몰고 집 밑의 선착장에 계류를 시키고 올라갔다.
“아이 아저씨 싫어”여동생의 목소리였다.
“야 전에 5만원 줬으면 이번에도 5만원이면 되잖아?”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난 민박 요금을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이 아저씨 물가란 물가는 다 오르는데 제 몸 값은 안 오르고 그대로면 안 되잖아요? 만원만 더 써요”놀라운 말이 여동생 입에서 나왔다.
“애라 모르겠다, 좋아 만원 더 쓰지 자 6만원이다 어서 벗어”하는 말이 들렸다.
“여긴 안 돼요 우리 오빠 올지 모르니 저 위에 집으로 가요”여동생의 말에 나는 놀라며 몸을 숨겼다.
“흐흐흐 그래 여 예쁜 것”여동생과 낚시꾼 차림의 남자가 함께 부엌에서 나와 폐가를 고쳐 민박 손님을 받는 집으로 올라가며
그 낚시꾼 차림의 남자는 연방 여동생의 엉덩이를 만지고 젖가슴 안으로 손을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동생은 아무 저항도 안 하고 그 낚시꾼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부엌칼을 들었다.
가 여동생과 그 낚시꾼을 함께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아무 밑천도 없이 고향으로 오자 여동생이 뭉텅이 돈다발을 준 것이........
그것은 그 때 생각을 해 보니 낚시꾼에게 몸을 팔아 모은 돈이란 것을 알자 슬그머니 부엌칼을 제 자리에 놓고
나는 낚시꾼이 부탁을 한 밑밥만 챙겨가지고 암벽을 내려갔으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어떻게 내려갔는지도 모르게
겨우 내려가 배를 몰고 낚시꾼에게 밑밥을 주고 바다 가운데에 배를 띄우고 밑반찬으로 쓸 고기를 낚시로 잡으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물만 흘리며 고기를 잡다가 낚시꾼들이 철수를 하기에 그들을 태우고 섬으로 왔다.
집에 도착을 하였을 때는 여동생 혼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있었다.
그 낚시꾼으로 보이든 사람도 없었다.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빠 아까 난제 낚시꾼 하나가 왔다가 전화를 받고 가 버렸어”저녁상을 앞에 두고 여동생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넌지시 물으며 여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일은 무슨 일?”여동생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변한 것을 나는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배를 장만을 해 주었는데 어떻게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며 마지막 낚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여동생과 함께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본섬에 내다 팔아야 할 시기가 왔다.
고기를 잡는 데는 물때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물을 쳐 두고 새벽에 나가서 그물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날도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여동생과 함께 바다로 나갔다.
한참 그물을 올리는데 여동생 모습이 안 보였다.
아무리 일어나서 봐도 여동생 모습은 안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기관이 있는 배 운전석으로 가서 밑의 기관실을 봤다.
“오빠 뭘 봐 오줌 누는 것 처음 봐?”여동생이 깡통 위에 앉아 오줌을 누며 눈을 흘겼다.
“미....미안하다”하며 눈을 돌렸다.
그러나 검은 피부의 여동생 엉덩이의 하얀 살결이 눈에 아롱거렸다.
“..............”서서히 혼자 그물을 끌어올렸다.
“변태”여동생이 언제 왔는지 올린 그물에서 고기를 때어 선창의 물에 던지며 눈웃음을 치며 흘겼다.
“그런 넌?”아차차 하였지만 이미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내가 뭐?”여동생이 벌떡 일어서며 대들었다.
“................”참으려고 말을 안 하며 그물만 당겼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어서 말 해”여동생이 앙칼지게 말을 하며 계속 대어들었다.
“................”다시 참았다.
아니 참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말이야 어서 말 해 어서”내가 당기든 그물에서 나의 손을 때게 하며 또 대어 들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저씨 물가란 물가는 다 오르는데 제 몸 값은 안 오르고 그대로면 안 되잖아요? 만원만 더 써요”여동생이 낚시꾼 차림의 남자에게 하였던 말을 그대로 하였다.
“..................”여동생은 놀란 토끼눈을 하였다.
“여긴 안 돼요 우리 오빠 올지 모르니 저 위에 집으로 가요”계속 여동생이 하던 말을 토씨 하나 안 빠트리고 그대로 하였다.
“흑흑흑”여동생이 그대로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었다.
“울지 마”난 여동생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었다.
“오빠 내가 더러운 여자지 흑흑흑”여동생이 내 품에 안기며 계속 울었다.
“아니야 나가 너무 너를 몰랐다 몰랐어. 미안 해”여동생을 품에 지그시 안으며 말을 하였다.
“아니야 오빠 나가 더러워서 함께 있기 싫었지? 흑흑흑”여동생은 계속 울었다.
“아니야 넌 마음이 고운 천사야 그렇게 해 가며 이 배를 나에게 사 줬지 않니?”하고 말을 하자
“정말 내가 안 더러워?”여동생이 내 품에서 빠져 나가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암 깨끗하지 깨끗해”하고 웃으며 말하자
“그럼 오빠 내 부탁 하나 들어 줄 거야?”여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뭐?”하고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날 오빠가 가져”여동생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뭐? 뭐라고?”놀라며 묻자
“싫은 거지? 더러워서 싫은 거지?”눈물을 다시 흘릴 기세였다.
“아니야, 아니야 넌 내 여동생이야 여동생”하고 말을 하자
“오빠가 난 좋아 제발 날 한 번만이라도 안 아 줘”여동생이 나의 품으로 다시 안기며 말을 하였다.
어떻게 해 야 할지를 몰랐다.
어떻게 여동생의 마음을 돌리게 할 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오빠 가만있어, 응 알았지?”여동생은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입는 비닐로 된 물 옷 위로 나의 불룩해진 좆을 잡았다.
“얘 난 네 오빠야 오빠”하며 밀쳤으나 여동생은 나처럼 어부의 딸이라 쉽게 잡은 좆을 놓지 않았다.
“따라 와”여동생이 웃으며 나의 좆을 당겼다.
“아야 아파 놔”하고 말을 하였으나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들리는 것을 파도소리 뿐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여동생의 힘에 의하여 기관실로 끌려가야 하였다.
말이 기관실이지 트럭의 엔진이 고작이요 엔진 옆에는 사란 하나가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여름에 고기를 잡다가 잔뜩 더우면 거기에 누어서 오침을 즐기는 그런 공간이었다.
여동생은 다짜고짜 나를 거기에 눕혔고 눈을 깜짝 할 사이에 비닐 옷을 벗기더니 바지와 팬티도 벗겼다.
“히히히 이제 내가 오빠 강간을 한다, 히히히”여동생은 나의 알몸을 내려다보며 비닐 옷을 벗더니 바지와 티도 다 벗어버렸다.
친여동생이 아니었다면 난 계속 알몸을 감상하였겠지만 친여동생이란 생각 때문에 난 눈을 감아야 하였다.
“그만 두면 아~~~”여동생이 내 몸으로 올라오자 나는 눈을 감고 여동생의 가슴을 밀며 말을 하기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말이 체 끝나지 않았는데 나의 좆이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히히히 오빠 동생에게 강간당하는 기분이 어때?”여동생이 하체를 조금씩 움직이며 물었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오빠 앞으로 몸 안 팔게 대신에 오빠가 날 사랑 해 줘”여동생이 상체를 내 상체에 포개며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몸이 완전히 포개어 지자 나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제 여동생이 아니었다.
나는 여동생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빨았다.
나는 여동생의 입술을 빨면서 생각을 하였다.
여동생 자신의 말로는 여동생이 자신은 강간을 한다곤 하였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입대 이틀을 앞두었을 때 그때는 내 나이 21살이었고 여동생 나이 갓 13살이었다.
외딴 섬에다가 전부터 남자가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 많이 죽는 바람에 여자가 많았고
그러나 남자는 홀로 된 과부를 아주 쉽게 넘보았고 그렇게 되자 나이에 불문하고 남녀 간의 문란함은 뭍과는 너무나도 다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날 내 여동생은 나에게 군대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장면을 사 달라고 하였고 요즘이야 하찮은
자장면이지만 그 자장면도 우리 섬에서는 먹을 수가 없었기에 분교가 있던 곳에서 배를 타고
본섬으로 가서야 먹을 수가 있었는데 여동생과 난 본섬에서 자장면을 먹고 분교를 지나 우리 집으로 오는데
“오빠 뭍에 여자들은 예쁘다며?”여동생이 웃으며 물었다.
“뭐 별로야 별로”하자
“오빠 난 어때?”웃으며 묻기에
“너야 미인이지”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자
“헤헤헤 그런 오빠 군대에 다녀오면 내거 오빠 색시 할까?”여동생은 느닷없는 질문을 하기에 군밤을 한 대 쥐어박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서 살다가 섬으로 왔을 대 여동생이 나에게 돈다발을 주면서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오빠 뭍에 여자 남겨 두고 온 것은 아니지?”하고 묻기에
“아니 왜?”하고 묻자
“오빠 군대에 가기 전에 자장면 먹고 오면서 한 말 기억 안 나”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짜식 별걸 다 가지고 그래”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돈다발에만 신경을 썼지 여동생의 말은 흘려들었었다.
여동생이 나의 몸 위에 올라타고 나의 좆을 자신의 보지에 박고 몸을 포개자 흘려서는 안 되었을 말이란 것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여동생은 내 스스로가 자기를 안아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미치자 난 더 힘주어 여동생의 입술을 빨면서 하체를 상하로 움직였다,
“오빠 나 그래도 낚시꾼에게 몸을 줬지만 콘돔 안 하면 안 했다”여동생이 입술에서 입술을 때며 말을 하였다.
“............”여동생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여동생과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파도가 배를 흔들리게 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흔들렸다.
“그리고 알고 보면 내 처녀 오빠가 가져 간 셈이다 알아?”여동생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어...언제 내가?”놀라며 여동생 가슴을 밀치며 물었다.
“헤헤헤 실은 오빠 군대에서 휴가 왔을 때 집에서 입었던 팬티 있지 그 팬티 앞을 넣어서 처녀막 깼거든, 헤헤헤”여동생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
“저.....정말?”놀라며 묻자
“헤헤헤 증거 집에 그대로 있다 뭐 매롱”여동생은 놀라운 사실을 서슴없이 나에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여동생이 나의 가슴을 짚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오래 가지를 못 하였다.
난 한 마디 예고도 안 하고 여동생 보지 안에 나의 분신을 뿜었다.
여동생은 눈을 흘기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였다.
오빠의 물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그렇게 여동생과 나는 배 위에서 처음으로 아니 여동생의 말로는 두 번째라지만 나는 처음으로............
바다 속 용궁에 있는 아버지가 하나가 된 우리를 축하하였던지 그물을 올리자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그물에 걸려 있었다.
본섬에 가서 많은 돈을 받고 횟집에 고기를 넘기는데 여동생은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오더니 나에게 귀에 대고 말을 하였다.
“오빠 피임약 사 왔어”라고........
집으로 왔다 몇 마리 남겨둔 고기를 회로 떠서 술과 함께 마셨다.
“오빠 이게 오빠가 나의 처녀를 가져간 증거야”술이 한잔 된 여동생이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검붉은 피가 말라 붙어 변색이 된 팬티 한 장을 가지고 왔다.
분명히 휴가를 와서 입었던 나의 팬티였다.
이제 나와 여동생은 방을 하께 쓴다.
아니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아니 거의 매일 몇 번씩 하나가 된다.
밤이고 낮이고 집이고 선창가에고 배위고 구분을 안 하고 수시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갈매기를 벗을 삼고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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