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너머에 : 부자의 놀이 - 상편

거울 너머에





남자



여긴 어디지?



박지허는 눈을 뜨기 직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밝다. 우리 집은 반지하층이다.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어제는 너무 졸려 불을 켜지도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느껴지는 이 느낌은... 말랑말랑하다.



그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다치지 않도록 깔아두는 거랑 똑같다.



조금씩 손발 끝의 감각이 돌아오면서 지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의 빛이 무례하게 그의 눈을 엄습했다. 지허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뭣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도 몰랐다.



그는 어느 작은 방에 갇혀있었다.



지허는 비틀거리며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은 네 걸음만 걸어도 끝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게다가 벽은 네 면이 전부 거울로 이루어져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에 서있어도 시선이 꽂히는 느낌이었다. 방 한켠에는 샤워기와 변기가 놓여 있었고 뭣보다 가장 이질적인 물건은...



“여자?”



늘씬한 정장에 무릎 위로 꽤 올라온 미니스커트를 입은 한 여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그가 쓰러져 있던 것과 같아보였다. 긴 머리카락을 바닥에 어지럽게 늘어뜨린 그녀는 꿈이라도 꾸는 지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상당한 미인이었다. 도도한 도시의 캐리어 우먼 같은 이미지.



“으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보니 꽤나 이쁘장한 미녀와 함께 사방이 거울로 이루어진 방 한가운데 갇혀있다. 게다가 벽 어디에도 문 처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장을 통해서 내려왔나 싶어도 천장은 손도 안 닿을 위치에 있을뿐더러 너무 밝아서 올려다보기도 힘들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지허는 머리가 아파왔다.



“아... 으... 머리야...”



지허가 한 말이 아니었다. 지허는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봤다. 여자가 눈을 부비적 거리며 눈을 뜨고 있었다.







여자



“깼어요?”



캐리어우먼 조세희가 잠에서 깨기 직전 들은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는 아침에 마중해줄 남자친구가 없었다. 눈꺼풀이 아플 정도로 밝은 모양을 보아하니 아침인 모양이다. 게다가 목소리는 처음 듣는 남자. 그럼 결론은...



세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서서서서서설마?



눈 앞에 낯선 남자가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세희는 급히 떨어져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봤다. 어제 그대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 어제 선배들에게 미움받지 않을 정도로 술자리에 남아있다가 나온 모양새 그대로다. 남자 선배들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며 술은 넌지시 계속 권했지만 그녀는 쉽게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선배가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하는 적당한 시간에 지하철 시간을 내세우며 자리에서 빠졌다. 어떤 얼빠진 녀석이 자고가라는 소리를 했지만 친구덕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 지하철 시간이 워낙에 간당간당해서 빨리 가려고 골목길을 지나던 차였다. 그 후론 의식이 없다. 눈을 떠보니 러브 호텔이라고 믿어도 괜찮을 사방이 거울로 가득 찬 방. 혹시 술기운이 늦게 돌아 갑자기 기절이라도 한건가했지만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다.



“여, 여긴 어디에요?”



겁먹은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남자는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겨우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세희는 바짝 긴장한 무릎을 끌어당겼다. 남자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허벅지로 머물렀다.



“몰라요? 기억이 없나요?”

“아, 네. 어제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하진 않았어요. 게다가 틀림없이 집에 들어와서 잤고... 옷 매무새를 보아하니 당신이랑 잔 것 같진 않네요. 긴장 풀어요.”



서슴없이 얘기하는 남자였다. 세희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작은 방에 남자와 단 둘이 갇혀있다면 당연한 태도다. 세희는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고민했다.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이었다. 그리고 신입생 환영식이니 뭐니 하며 술자리가 있었다. 여자 선배들은 친절했지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세희에게 별로 말을 붙이지 않았고 조금 질 나쁜 남자 선배들은 사실상 그녀가 여 선배들에게 말을 붙일 기회를 거의 앗아갔다. 중간에 빠지고, 기억은 컷. 그리고 거울의 방.



한 동안 남자는 방의 벽 근처를 서성이며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문이라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불길한 생각을 자꾸 떠올리고 있었다.



쏘우라는 영화를 본 적 있었다. 직쏘라는 살인마가 사람을 밀실에 가둬놓고 퀴즈를 풀지 못하면 밀실에 갇힌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다. 그 외 다른 내용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이 쏘우에 나오는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 문제다. 퀴즈는 없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숨겨진 문 같은건 없네요.”



남자가 중얼거린다. 세희는 그의 말을 들으며 눈물이 왈칵 솟았다. 하지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세희.”

“예?”

“조세희에요. 그쪽은요?”



일단은 친해지자.



“아, 예. 박지허입니다.







거울 너머에



J그룹 회장 조빈 회장에게는 남다른 취미가 있었다. 남들에게는 알려줄 수도 보여줄 수도 없는 기이한 취미였다. 그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동급의 부자이거나 같은 취미를 가진 이른바 사교계의 상위권 인사들 뿐이었다.



부자들의 놀이였다.



그는 젊은 남녀 한 쌍을 비좁은 방 안에 가둬놓고 어떻게 그들이 행동하는지 관찰해왔다. 재밌는 실험이었다. 조빈 회장과 다른 취미의 공범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보일 때까지 그들만의 감옥에 가두었고 즐겁게 감상했다. 처음에는 철창 같은 천박하고 부실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놀이도구는 발전했다.



그것이 지금의 작품이었다. 유리 감옥이라고 불리는 이 방은 두께 50cm의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안에서는 마치 거울 처럼 보일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이정도로 두꺼운 유리에 한쪽은 밝은 빛을 쐬이고 한쪽은 어둡게 하면 밝은 쪽에서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효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유리 바깥 쪽에서는 느긋하게 조빈 회장의 공범자들이 그들이 벌이는 모습을 감상한다. 대부분의 경우 결말은 음탕하고 질 나쁘게 끝난다. 만족스러운 결말이 나오면 조빈 회장은 그들을 풀어준다.



남자는 대개 시골 한가운데 버려지지만 운이 나쁘면 다른 여부호에게 ‘교환’될 때가 있다. 그곳에서 남자는 여부호의 또 다른 취미에 노리개가 된다. 여자는 조금 불쌍하게 된다. 남자와 달리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남자처럼 시골 한가운데 버려지거나 다른 부호에게 교환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전에 ‘세척과정’을 거친다. 정액이라든가 체모같은 것이 검출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납치되는 여자들은 대부분 외모가 출중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여자들은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다.



그것은 아랫사람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하다.



지금 새로 들어온 남녀는 둘 다 성인이며 서로 낯선 사이다. 이번 노리개는 평범하다. 그래서 그런지 첫 시작도 평범한 시작이다. 문을 찾고 유리벽을 두드리고, 뭐 그런 것들이다.



간혹 더욱 재밌는 유흥을 위해 남녀 커플을 선별해서 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딸을 둘 다 알몸으로 집어 넣기도 한다. 식사 때는 늘 흥분제를 소량 넣어서 보낸다. 사흘이 가기 전에 아버지는 딸을 겁탈했다. 중학생 남녀를 넣기도 했다. 조금 오래가긴 했지만 결국 그들도 원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40대 남자와 갓 10살 된 꼬마애를 넣은 적 있었는데 만족할 결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남자는 차라리 자위로 해결했다. 추잡해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놀이는 대부분의 경우 합의로 하는 관계보단 한쪽에서의 일방적인 강간으로 끝났다.



하기사, 저 좁고 밝은 방 안에 갇힌 가운데서 섹스를 하고 싶은 기분은 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자제하지 못하는 성욕을 처리하는게 우선이지. 세 끼 식사 때마다 비아그라를 빠지지 않고 넣어서 보낸다.



잔인할 수록 관람객들은 열광한다. 관람객들이 좋아하면 사후 처리도 관대해진다.



조빈은 즐겁게 웃으며 그들을 감상했다. 일찍 끝나면 좋지만, 기다리는 재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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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감이 떠올라 써보는... 거울 너머에 입니다.

부자놀이입죠.

소꿉친구 관광얘기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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