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적 이성이야기 - 상편

처형!무덤까지 비밀이다.가 첫 작품이었습니다.작품이라기 보다는 나의 경험담이었죠.

오늘 부터는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성 경험에 대해 올릴까 합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난 탄광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생활하고 객지생활 군대생활 말고는 고향에서 살았다

얼마전 빚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난 어릴때부터 이성에 관심이 많은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정으로 인한 오르가즘을 느낀건 국민학교 3학년때였다.

어느날 운동장에서 축구 골대를 타고 올라 가는데 내자지가 골대와 마찰을 하면서

묘한 기분에 온몸이 황홀한 느낌을 받아 축구 골대를 죽자사자 오르락 내리락 했다

몇초후에 강렬하고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아마 1976년경에 국민학교 3학년 인걸로 기억이 된다

그당시 탄광촌이라 부유하지 못한 가정이 대부분이라 팬티라는걸 모르고 살았다

그냥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그당시 난 책보에 책과 도시락을 싸서 어깨에 대각으로

걸쳐메고 뛰어 다녔는데..어느날



난 논두렁을 열심히 달리는데 저번 축구골대일 처럼 짜리한 쾌감이 오기시작했다

아마도 헐렁한 반바지에 자지가 스치면서 자극을 받았나 보다

난 그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세게 달렸다

그러자 온몸을 타고 흐르는 그 쾌감과 동시에 숨이차서 죽을것 같은 고통이 함께 찾아왔다.

정말 숨차 죽는줄 알았다.

그리고 탄광촌이라 보니 광업소 측에서 목욕탕을 무료로 동네주민들에게 이용해주게 해서

엄마랑 자주 목욕탕엘 갔다

여탕에 따라가니 온통 벌거벗은 여자들의 나신들



어린 내눈에 보기에도 거의 무릉도원이었다

난 목욕보다는 여자들의 나체를 특히 털이 수북한 그곳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서 친구들 엄마보지 옆집 아줌마 보지 등등 아는사람들의 보지를 목격하고

어린 마음에 온동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누구 엄마는 보지털 대방많다 누구엄마 젖 무지 크다 등등

하여튼 입이 주책이다.

그 소문만 안냈으면 한해 더 여탕 구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이후로 엄마따라 여탕에 가는것은

접어야 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 음악 선생님이 너무 예뻐서 짝사랑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것을 목격하고는 심한 배신감이 들어 음악 선생 얼굴도 보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음악 선생이 우리 밑에집에 세들어 살았는데 하루는 영어 선생님이 찾아와서 음악 선생님 방으로 들어 가는걸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리집 담을 넘어 음악 선생님방 창문 밑에서 쪼그려 앉아 상황을 주시 했다

방안에서는 도란 도란 이야기 소리와 함꼐 가끔 음악선생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불이 꺼졌다

난 갑자기 머리털이 쭈삣 해지면서 입안의 침이 모두말라 기침이 나올려고 했다

억지로 기침을 참고 입을 막고 창문밑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부시럭 대는 소리

음악 선생의 코맹맹소리

뭔가를 쭉쭉 빠는 소리에 내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면서 터질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잠시후

퍽퍽 거리는 소리와

"아~~~~아응~~~아~~"

음악선생은 야릇한 신음소리

"퍼억 퍼억 쫘악 퍽 쫘악퍽"

잠시인것 같았는데 마치 몇시간이 흐른것 같은 순간

"퍽 퍽 퍽 퍽 퍽~~~"

"아~~~아아 ~~~아~~~..............."

그리고는 조용한 느낌

뭔가 아쉬운듯한 음악선생

창문으로 잠시 번쩍이는 불빛

지금 생각하니 담배불 이었나보다 그리고 느끼기 전에 먼저 일을 마친 영어 선생 때문에

약간 아쉬웠던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번 영어 선생이 찾아왔고 간간히 체육선생이 다녀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어 선생이 꽤나 밝혔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일 이후 난 영어선생이 외출하면 몰래 영어 선생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뒤비기도 하고 벗어논 팬티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하루는 돌돌 뭉쳐져 있던 팬티를 펴보고는 소리를 지를뻔하고 그 이후로는 다시는

영어 선생의 방에 몰래 들어가는일이 없었다

팬티에 시커먼 피가 굳어 있는걸 보고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놀랬기 때문이다



그런 성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옆집 형에게 처음으로 딸딸이(자위)를 배운것도 중학교 그무렵 이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 거의 중독 되다시피했다

매일 두번은 기본으로 쳤다

이불속에서 소나무 숲에서 화장실에서..

그 딸딸이는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까지 계속 되다가 2학년 올라가서 교복 자유화 되고 부터

딸딸이 치는 빈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교복을 입은 마지막 교복 세대다

까만색깔에 누런단추가 있는 일제의 잔재 그러나 요즘 그런 교복이 그립다



내가 처음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다

고등학교 2학년떄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적이 있었는데

그당시 수술 잘한다는 시내 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때 나한테 잘해주던 간호원 누나가 있었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간호원이라 불렀다

병원 간호사 노조가 생기고 부터 간호사란 말을 사용했지만 83년도만 해도 그냥 간호원이었다.

그 간호원 누나는 덧니가 나와 무척 매력적이고 몸도 오통한게 내눈엔 예뻣다

일주일 정도 입원하는 동안 자주 내방에 와서 놀다가곤 했는데

정이 들려는 찰나에 퇴원을 했다



누나는 학교 마치고 보고 싶으면 병원으로 찾아 오라고 했다

맛있는것 사준다고

난 그러마 하고 퇴원하고 몇일후 갑자기 수술한 부위에 열이나고 무척 아파

다시 그병원에 찾아 갔더니 곪았단다

추석이 2틀정도 남은날이었다

다시 곪았는데 수술을 하고 재입원을 했다

큰수술이 아니고 곪은 부위를 메스로 째고 고무같은 심을 박아놓았다

고름 잘 빠지라고

4일정도 입원하라고 해서 입원을 했고

엄마하고 아버지는 추석 준비 때문에 나혼자 있으란다



그리고 간호원 누나가 추석쉬고 온다면서 추석날 저녁에 맛있는 음식 싸 온다고

잘 놀고 있으라면서 나갔다

난 아무도 없는 병원 입원실에서 혼자 덩그러이 누워 티브이만 봤다

다들 아시겠지만 시골 병원 입원실은 그당시 침대도 없고

온돌방처럼 되어있었다.꼭 여인숙 같았다

추석 전날밤은 왜그리 길고 시간은 왜그리 안가던지 심심하고 무서웠다

뒹굴뒹굴 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고

추석날 아침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간호원 누나가 오기로 한 저녁이 되었다

하루종일 티브로 시간을 떼우다보니 어둑어둑 해가 지고

병원 현관문이 열리면서

덧니만 보이게 웃으면서 누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달려가서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정도였다

"많이 기다렸어?"

"헤헤 기다리긴요.."

"배고프지?누나방에 가자 맛있는거 줄께"

난 누나 뒤를 쫄래 쫄래 따라 2층 간호원 숙소로 따라 들어갔다

추석 차례지낸 음식이란 과일들

누나가 이것저것 집어주어 정신없이 먹었다



배가 어느정도 부르자 음식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왜?이제 배불러?"

"네"

"그럼 그만 먹어 수술한자리 터지겠다 후후"

그러면서 누나는 음식을 대충 치워 창문가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는

"누나 옷갈아 입을테니 돌아서 있어"

헐 난 뒤돌아 앉으면서 뒤가 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냥 참았다.

"이제 돌아앉아도 돼"

뒤돌아 보니 헐렁한 치마에 위에는 노란 츄리닝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모습이 왜그리 매력적이고 섹시한지...지금 같으면 성감 떨어질 일이지만.....



그리고 마주앉아 누나랑 이런저런 주변이야기를 하다가

누나 첫사랑 이야기도 들려주고

고향이야기며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한테

"너 연애 해본적 있어?"

"예?"

난 얼굴이 확 하고 올랐다

누나 눈을 못볼정도였다

"저 이제 고2인데요...."

"요즘은 고2같으면 거의 경험이 있다던데?"

"아이고..전 잘몰라요.."

난 얼굴이 빨개졌다

누나는 그런 내모습이 재미있는지 계속 야릇한 질문을 한다.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좀 지루하지만 어릴적 추억이랑 동감 가는것도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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